일본의 아베 신조 정권이 다음달 주요 7개국(G7) 회의 참석차 일본을 방문하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히로시마행을 성사시키기 위해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오바마가 히로시마를 방문하면 원폭 피폭지를 찾는 첫번째 미국 대통령이 된다. 피해자들에게 사과한다면 미국의 양심을 보여줄 수 있으나 2차대전을 조기에 끝내기 위한 원폭 투하가 잘못된 결정이란 인식을 심어줄 정치적 부담도 안고 있다. 이런 점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이 지난 23일 홋카이도 강연에서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의 지난 11일 히로시마 방문에 얽힌 내막을 공개하면서 “여러 차례 미국에 사과를 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고 공개한 것은 일본의 정치적 배려로 해석된다. 일본 언론은 “핵무기가 사라진다면 미국의 사과는 필요 없다”고 보도하고 있다. ‘핵 없는 세상’을 주창해 온 오바마도 히로시마행을 진지하게 검토해온 데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의 협조도 필요하기 때문에 방문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총리관저로 들어서고 있다._연합뉴스
어쩌면 오바마의 사과 여부가 아베 정권에는 그다지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오바마는 히로시마에서 핵무기 없는 세상을 역설할 것이고 방문 자체가 일본에 대한 사과와 마찬가지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 때문에 전쟁 피해국 이미지를 극대화시켜 보통국가로 거듭나려는 아베 정권에 날개를 달아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런 점에서 오바마의 히로시마행이 왜 하필 역사왜곡을 일삼고 있는 아베 정권하에서 이뤄지느냐는 주변국들의 우려는 타당성이 있다.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이 빛을 발하려면 과거사 문제에 대한 아베 정권의 진정한 반성이 전제돼야 한다.
아베 정권은 2차대전 당시 위안부와 강제 징용 피해자들을 외면해 왔다. 기시다 외무상이 “인류의 비극을 두 번 일으켜서는 안된다”며 오바마의 히로시마행을 희망했지만 얼마나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아베 정권은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을 계기로 일본이 역사 수정주의를 노골화할 가능성을 주변국들이 우려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것은 한·일 위안부 협상 타결이 오바마의 히로시마행을 쉽게 만들어줄 것이란 점이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바라는 아베 정권의 진심 어린 사죄 없이 일본이 2차대전 피해자란 인식만 확산된다면 서글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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