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사랑은 증오보다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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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기고]사랑은 증오보다 강하다

by 경향글로벌칼럼 2015. 11. 18.

말리 출신 감독 압델라만 시사코의 영화 <팀북투>는 이슬람국가(IS) 점령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 광적인 근본주의자들이 지배하는 세계에서는 음악도, 춤도, 술도, 축구도 심지어 연애도 허락되지 않는다.

마을 구석구석에는 총을 든 군인들이 사람들의 일상에 쾌락과 웃음이 스며들까 감시한다. 마을 공터에 모여 공없이 축구를 하는 아이들의 장면은 이 영화의 압권이다.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공을 주거니받거니, 숨가쁘게 축구를 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흡사 최고의 경지에 이른 마임이스트의 공연을 보는 듯하다.

살아있는 한, 인간은 죽음의 공포 앞에서도 삶의 기쁨을 포기할 수 없음을 그 장면은 잘 보여준다. 파리를 강타한 IS 테러범들의 총구는 정확히 그들이 금지하는 것들의 리스트를 파리 한복판에서 보여주었다. 축구, 술, 음악, 춤, 자유, 즐거움.

그날 밤, 파리 사람들은 자신이 아는 모든 사람들의 생사를 확인하느라 뜬눈으로 새웠다. 우린 모두 카페 테라스에서 금요일 저녁 맥주 한잔을 들이켜며 수다를 떨 수 있고, 록 콘서트장에서 몸을 흔들 수 있는 불특정 다수였기 때문이다. 사촌의 직장 동료, 이웃집 여자의 남동생, 친구의 여자친구…, 한두 다리 건너면 거기엔 테러에 희생된 사람이 있었다.


휴대전화로 밝힌 ‘추모의 빛’ 프랑스인들이 17일 밤 남부 툴루즈에 있는 카피톨 광장에서 휴대전화 조명을 밝혀 파리 동시다발 테러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툴루즈_AP연합뉴스


총성이 멎은 토요일 아침, 마주친 이웃들의 얼굴은 창백했다. 굳게 닫힌 상점들 사이 빵집에서 흘러나오는 불빛만이 오아시스처럼 빛났다.

정부는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했다. 모든 문화시설은 폐쇄하고, 모든 옥외 집회와 회합은 금지된다. 갑자기 검은 장막이 우리 앞에 드리워졌다.

그러나, 일요일이 되자 사람들은 약속한 듯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그들의 등을 떠민 것이 주체할 수 없이 쏟아지던 햇살이었는지, 자유의 공기를 되찾고 싶은 사람들의 욕망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공화국 광장은 사람들로 가득 채워졌다. 옥외 회합을 금한다는 정부의 방침 따위는 바닥에 내던지고, 사람들은 거기서 서로를 얼싸안았다. “우리의 사랑은 당신들의 증오보다 강하다.”, “더 많은 삶을, 더 많은 기쁨을, 더 따뜻한 외국인에 대한 환대를!”, “우리의 다민족주의가 승리하리라.”

꽃과 촛불에 에워싸인 광장엔 사랑과 자유와 인류애가 가득했다. 사람들은 우리가 이 비극에서 나오기 위해 되찾아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를 한입으로 말했다. 테러가 증폭시킨 증오를 신념으로 전환시킨 사람들은 선거에서 극우정당에 표를 던지겠지만, 그들이 끼어들 자리는 그 광장에 없었다.

이 자리에 폭탄이 떨어진다 해도, 난 이 사람들과 마지막까지 자유와 사랑을 누리겠다는 생각이 가슴에 스몄다.

그날 밤, 눈물겨운 위안의 용광로 속에서 녹록해진 마음은 프랑스가 IS 심장부에 폭탄 20개를 투하했다는 뉴스를 접하며 혼란에 직면한다. 이미 9월부터 이라크와 시리아에 있는 IS의 기지를 공습해온 프랑스가, 테러 직후 더 야멸찬 공습을 감행하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견된 일이다. 세상에 죽음과 암흑을 전파하고자 안달이 난 자들의 뺨을 세게 휘갈겨 주는 일을 누군가 분명 해야 했다.

그러나 결국 암흑을 이기는 것은 빛이라는 진리가 권력자의 머리까지는 결코 도달하지 않는 걸까?

테러 이후 정부가 발표한 모든 조치들은 프랑스 사회가 점점 더 IS가 원하는 사회를 자발적으로 닮아가는 길로 들어서고 있음을 보여준다. 헌법까지 개정해 대테러전을 준비하고, 경찰 병력을 증가시키며, 일부 이슬람 사원을 폐쇄하고, 전쟁을 선포하고….

지난 15년간 미국이 벌여온 테러와의 전쟁이 오히려 더 많은 테러를 낳은 사실을 그들은 모른다는 건가? 테러 직후 열린 주요 20개국(G20) 회의에는 시리아 내전에 발을 담근 모든 당사국들이 모였다. IS에 무기를 공급하는 사우디아라비아까지.

최악의 난민 사태를 야기하여, 서방의 여러 나라들이 한발씩 담그게 했던 그 내전을, 원하기만 한다면 그 자리에서 종식시킬 수도 있었다. 테러를 종식시키고 IS의 숨통을 끊어놓길 원한다면, G20 참가국들이 사우디아라비아를 압박하는 것 이상의 현답은 없다.

그러나 그들이 한 일은 테러의 물주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그럴듯한 성명서 하나를 내놓은 것뿐이다.

프랑스 경찰은 8명의 테러범 모두 프랑스인이라고 발표했다(난민 잠입설은 입증되지 않았다). 이 나라에서 나고 자란 청년들이 목숨을 던지면서까지 자국인들을 총으로 쓰러뜨리고자 한다면, 그들이 빠져든 광적인 종교집단 이전에, 그들을 구석으로 내몬 프랑스 사회에 그 첫 번째 책임을 물어야 한다.

1%를 위해 작동하는 이 사회, 평등의 가치를 저버린 오늘의 프랑스는 스스로 만들어낸 독버섯에 감염된 것이다. 그 독버섯은 시리아에 던져지는 몇 개의 폭탄으로 결코 없어질 수 없다.

광장의 목소리는 언제나 옳았고, 전쟁은 인류의 어떤 문제도 해결해준 적이 없다. 더 많은 자유, 평등, 박애만이 우리가 아는 유일한 해법이다.


목수정 | 작가·파리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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