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누구나 악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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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여적]누구나 악마가 된다

by 경향글로벌칼럼 2015. 11. 20.

이스마엘 오마르 모스테파이는 129명의 무고한 생명을 짓밟은 11·13 파리 연쇄 테러범 가운데 제일 먼저 신상이 드러난 인물이다. 놀랍게도 그는 주변의 누구도 테러범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평범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옛 이웃들은 그가 매우 좋은 사람이었고 친절했으며 개방적인 사람이었다고 기억했다. 기혼이며 5살 된 아들도 있었다. 다른 테러범도 버스 운전사, 기술자 등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시민이었다.

지난 18일 파리 군·경의 검거작전으로 사망한 테러 총책 압둘하미드 아바우드도 다르지 않다. 부족함이 없는 가정에서 자랐고 다루기 어려운 자식이 전혀 아니었으며 좋은 사업가가 될 아이였다는 게 가족과 주변의 눈에 비친 그의 모습이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숨진 뒤 “사이코패스이며 악마”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그가 왜 어느 날 갑자기 시리아로 떠났으며 어떻게 이슬람 극단주의자가 됐는지는 알지 못했다.



아바우드 아버지의 말이 시사하듯이 악은 악마가 저지르는 게 아니다. 악이 저질러졌으니 그것을 행한 자에게 악마의 낙인이 찍힐 뿐이다. 독일계 유대인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나치 친위대 대령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을 보고 유대인 학살을 아무 양심의 가책 없이 저지른 측면에 주목했다. 그가 보기에 아이히만은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다. 매우 성실하고 근면한 공직자였다. 서류 정리는 늘 깔끔했고 일찍 출근해 가장 늦게 퇴근했다. 그가 처리한 서류를 통해 약 400만명의 유대인이 학살됐지만 그에게 그것은 상부의 지시에 따라 업무를 충실히 이행한 것일 뿐이었다. 동기도 신념도 악의도 없었다.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말한 ‘악의 평범성’이다.

악의 평범성은 국가나 종교, 진영, 조직 등의 명령이나 가치체계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일 때 현실화한다. 그 싹은 이슬람국가(IS)뿐 아니라 우리 내부에서도 얼마든지 자랄 수 있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에 대해 근면성은 범죄가 아니지만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은 명백한 유죄임을 강조했다. 세상의 악은 인간이 악해서 저지르는 게 아니다. 그건 다른 사람의 처지를 생각하지 않고 그런 정치·사회의 구조악에 저항하지 않은 결과다.


신동호 논설위원 hud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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