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외교부를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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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기고]외교부를 위한 변명

by 경향글로벌칼럼 2015. 4. 8.

최근 외교부를 둘러싼 논란이 거세다. 과연 중장기 외교전략 아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문제에 제대로 대응하고 있는지 외교부에 대한 집중 포화가 쏟아지고 있다. AIIB에 좀 더 빨리 가입했다면 우리의 지분을 더 확실히 챙길 수 있었을 것이다. 사드에 가입했다면 한·미동맹도 강화되면서 외교적 균형을 이루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논리는 이론적으로나 가능해 보인다.

싱가포르 국부 리콴유의 장례식 전후 싱가포르 외교가 집중 조명 받았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을 잘 이용하는 싱가포르 외교에 찬사 일색이다. 그러나 싱가포르는 우리보다 상황이 좋다. 통일문제도 없고 주변에 싱가포르를 위협하는 강대국들도 없다. 싱가포르가 대만에서 군사훈련을 한다고 해서 중국이 싱가포르에 안보적 압박을 가할 수 없다. 미국도 마이클 페이 태형사건에서 보듯 소도시국가를 윽박질러봐야 망신살만 뻗친다.

그럼에도 국력은 여전히 현실이며, 싱가포르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은 사우디 압둘라 국왕 장례식에 오바마 대통령과 현직 고위 관료 위주의 대규모 조문단이 갔지만, 리콴유 장례식에는 키신저와 클린턴이 참석했다. 이들은 유명인사이지만 전직이다. 영국도 총리가 직접 압둘라 국왕 장례식에 갔지만 싱가포르에는 장관급을 보냈을 뿐이다.

국제정치는 철저히 셈법에 따라 이루어짐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우리는 오히려 싱가포르보다 어려운 상황이다.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직면해 있고 경제와 통일을 위해 중국의 지지가 필요하다. 일본과 러시아 그 어느 하나 간단하지 않다.

최근 AIIB와 사드 이슈만 보아도 미·중 두 강대국의 한국 다루기는 대단히 노련하다.

미국은 일본 아베 총리의 미국 의회연설 허용으로 한국의 경쟁 심리를 자극하고 있다. 중국은 애초 군사문제였던 사드를 전략문제로 비화시키면서 한국의 여론을 들었다놨다 한다. 미·중 모두를 의식해야 하고 허점이 많은 한국의 현실 속에서 외교부가 섣불리 중차대한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외교부라고 AIIB 가입이 국익에 도움이 되는 것을 모를 리 없다. 중국도 의식되지만 검증되지 않는 사드를 무작정 받아들이는 것도 힘들다.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고려해 무작정 노(No)라고 하기도 어렵다. 한 걸음 삐끗하면 바로 낭떠러지이기 때문이다. 타이밍의 옳고 그름은 차후 지켜봐야 알 수 있다.

그러나 중장기 전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외교부에 뼈아픈 대목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게 지나치게 매몰차고 냉정한 면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한국외교가 진정 AIIB에 조기 가입하는 것이 국익에 부합한다고 생각했다면, 언론과 전문가 집단은 AIIB가 이슈가 되던 시점부터 이와 관련해 보도와 기고가 있어야 했고 정부에 결단을 촉구했어야 한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는 격이다.

북핵 6자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왼쪽)와 김숙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15일 외교부에서 만나 한·미 외교장관회담 의제에 대해 조율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언론과 전문가들의 외교부 비판 가세는 아쉬움이 남는다. 외교부에 더 많은 책임이 있지만, 국익을 위하는 차원이라면 언론과 전문가 집단 또한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지금 윤병세 장관의 밤늦게 일하는 업무 스타일을 비판하는 것이 이슈가 될 정도로 한국의 외교환경이 한가한가? 만약 한국외교가 순항했다면 오히려 불철주야 국익을 위한다고 칭찬했을 것인가? 지금 우리 자신을 지나치게 비판하는 것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 자체가 강대국들에 우리를 저평가하게 하는 빌미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외교부를 몰아치기보다는, 더 옳은 전략적 결단을 내릴 수 있도록 제언하고 격려하는 것이다.


황재호 | 한국외국어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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