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규 |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일본이 ‘위안부’ 할머니들의 가슴에 또 다시 대못을 박았다. 일본의 극우 록밴드가 할머니들이 계시는 ‘나눔의 집’으로 할머니들과 한국을 모독하는 CD를 보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 취재차 방한 중이던 독일인 기자와 함께 ‘나눔의 집’을 방문했을 때, 당신의 처참했던 과거를 되새기며 슬피 흐느끼시던 박옥선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이 다시금 떠올라 가슴이 찢어진다. 할머니들께서 즉각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했지만, 3·1절에 맞추어 보냈음이 역력한 것에 더더욱 분노를 느낀다.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는 일본군에 의한 ‘위안부’ 강제연행 사실을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연행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의 수정 필요성을 주장한다. 극우 성향이 농후한 아베 총리는 최근 ‘교육재생 실행회의’라는 기구를 만들어 ‘교육재생’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가 지난 2월28일 ‘시정 연설’에서 강조한 것처럼 ‘강한 일본’을 만들기 위해 ‘도덕교육의 충실’을 기초로 글로벌한 인재를 육성하는 것이 그 골자다. 그는 <아름다운 나라로>라는 책을 낸 적이 있는데, 책 말미에 집필 목적에 대해 “이 나라를 자신과 긍지를 가질 수 있는 나라로 만들고 싶다는 기분을 조금이라도 젊은 세대에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발언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
(경향신문DB)
일본 젊은이들이 자국에 대해 스스로 자신과 긍지를 지니려면 우선 그에 걸맞은 ‘국격’을 구비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패전 후 경제 기적을 이뤄낸 일본은 국제기구와 개발도상국에 적지 않은 경제적 공헌을 해 그 점에서는 어느 정도 격을 높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과거사 미화 등 건강하지 못한 역사인식은 ‘모범 국가’로 존경받고 있는 독일과는 대조를 이루고 있다.
오구라 가즈오 전 주한대사는 얼마 전 자국의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과거에 대한 반성은 한국과 중국의 국민 감정에 대한 배려 때문에 필요할 뿐만이 아니라, 일본에 대한 민주와 자유 개념의 정착의 증거로서도 필요한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렇다. 일본은 과거사가 국제 문제이기 전에 국내 문제임을 자각하고 과거를 왜곡함이 없이 사실대로 가르쳐야 한다.
일본은 진정한 ‘교육재생’을 위해 교과서에 ‘위안부’ 항목을 부활시켜 자라나는 젊은이들에게 자신들이 범한 과오를 있는 그대로 가르쳐야 할 것이다. 개헌을 서두르기에 앞서 ‘일본군 위안부에 관한 명예훼손 금지법’, ‘일본군 위안부 사죄 및 보상에 관한 법’을 먼저 제정해야 할 것이다. 자국이 입은 ‘피해’를 강조하기 위한 ‘평화박물관’을 짓기에 앞서, 가해 행위를 스스로 밝히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떳떳한 미래를 위해 과거의 잘못을 진심으로 인정하고 사죄할 때, 일본인들은 진정한 민주와 자유에 기초한 자긍심을 가진 국제인으로서 당당히 세계 무대에서 활약할 수 있을 것이며 자타가 공인하는 모범 국가로서 존경받게 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3·1절 기념사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역사적 입장은 천년의 역사가 흘러도 변할 수 없는 것”이라며, 일본이 지난 역사에 대해 올곧은 성찰을 해야 비로소 양국이 동반자가 되어 공동 번영의 미래를 함께 열어 갈 수 있다고 밝혔다. 백번 맞는 말이다. 그 미래의 문을 여는 열쇠가 바로 ‘위안부’ 문제의 해결이다.
일본이 패전 후 지금까지 국제사회의 평화를 위해 베풀어왔던 ‘덕’을 ‘악’으로 만드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일본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진심에서 우러난 국가 차원의 공식 사죄를 촉구한다. 이로써 일본은 국제사회의 신뢰 회복은 물론 대한민국의 멋진 이웃이자 ‘아름다운 나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그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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