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핵비확산 공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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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

[기고]핵비확산 공론이 필요하다

by 경향글로벌칼럼 2015. 7. 6.
한·미 원자력협정이 42년 만에 개정되어 미국 의회의 최종 승인만 남겨두고 있다. 미 의회의 심의절차가 예상대로 순조롭게 진행되면 늦어도 내년 초에는 정식 발효가 된다. 세계 5위 수준의 원자력 강국인 한국이 세계 핵비확산 체제에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가는 셈이다. 그럼에도 국민들 마음 한구석에는 핵무장에 대한 미련이 여전히 남아있다.

원자력협정 개정을 계기로 핵비확산에 대한 공론(公論)이 필요한 이유다. 한마디로 핵무장의 신화는 깨어져야 할 주술(呪術)이다. 남북한 모두 핵무장에 대한 비원(悲願)을 버리지 못하는 한 통일 한국호(號)는 제대로 출항할 수가 없다. 핵무기를 실은 한국호는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좌초될 수 있다.

통일 한국호가 순항하기 위해서는 핵무장 깃발을 내려야 한다. 핵무장 깃발을 높이 한 채 동북아시아의 안정과 평화를 주장하는 것은 ‘흘러간 미래’처럼 형용모순이다. 위험한 깃발을 내려야 한다. 이를 위해 핵물리학자와 원자력공학자들이 앞장서야 한다. 동기야 어찌됐든 핵무기 개발의 지식과 기술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핵물리학에 윤리를 입혀야 하는 지식인으로서 책임감(지성주의)을 가져달라는 것이다.

박노벽 외교부 원자력 협력대사와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가 22일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한미원자력협정에 가서명을 하고 있다._경향DB

핵무기는 문명과 인류의 공멸이 내재된 국가적 욕망이 극대화된 실체이다. 대북 억지력을 핑계로 똑같이 핵무기 욕망을 키워내는 국가주의적 발상은 위험하다. 대신 공생을 목표로 한반도비핵화를 실행할 수 있는 도덕적 용기가 과학자 집단에서부터 발현되어야 한다.

남북통일이 한반도에 핵무기가 있는 상태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틀렸다. 통일한국은 ‘무궁화 꽃’을 피울 수가 없다. 미국, 중국을 포함한 어느 주변국들이 핵무기를 가진 통일한국을 용인하겠는가.

결코 패배주의가 아니다. 동북아시아를 비핵지대화로 만들기 위한 첫 삽을 우리가 뜨자는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역내(域內)에서 전쟁을 일으키지 않은 유일한 평화국가가 아닌가.

지금이라도 과학자들이 솔선수범하여 핵무기 개발에 동참하지 않겠다고 대외적으로 천명해야 한다. 이는 합리적이며, 건전한 지성을 바탕으로 작성된 한국의 핵비확산 선언에 결코 지워지지 않을 지문(指紋)을 찍는 일이자, 동시에 우리 과학자들의 도덕적 승리로 오랫동안 기록될 것이다.

핵비확산 공론화 작업은 결코 이상주의적이지 않다. 오히려 ‘핵무기에는 핵무기로’라는 민족주의적 핵의병(核義兵)들의 주장이 내포하고 있는 비현실적인 허구에 맞서는 ‘핵 없는 세상’을 위한 실천적 운동이다.

핵비확산운동은 인권과 지구온난화처럼 성숙한 시민이라면 마땅히 고민해야 할 보편적, 윤리적 가치이다. 윤리가 배제된 과학은 정의로운 과학이 아니다. 핵무기 개발과 같은 재앙의 과학에 애써 눈을 감고 침묵하는 것이 틀렸음을 지식인 과학자들이 보여줘야 한다.

그렇다고 과학자들이 사회에 특별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 자기 시대의 중요한 문제에 공감해 달라는 공동체 사회의 호명(呼名)이다. 나아가 국제 핵비확산체제를 연결하는 데 우리 과학자들이 튼튼한 연결고리가 되어 달라는 주문이다.

지식인 과학자들이 이제라도 핵무기 개발을 주장하는 세력들과 정면으로 대결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국제사회에서 책임 있는 국가의 일원으로 핵비확산 신뢰도를 증진시키기 위해서라도 이 정도의 ‘용기’는 보여줘야 하지 않겠는가. 집단지성의 힘을 믿기에 하는 말이다.

이병철 | 평화협력원 핵비확산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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