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모 워싱턴 특파원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28세의 김정은이 국가의 지도자 자리를 물려받은 지 1년이 지났다. 전례없는 3대 권력세습과 정권 장악력 결핍에 대한 우려 속에 김정은은 국제사회의 비상한 주목을 받으며 1년을 보냈다.
김정은 통치 1년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는 6자회담 참가국 전체가 권력교체를 완료하고 2013년을 맞이하는 현 시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김정은에 대한 객관적이고 냉정한 평가는 새로 짜여진 국제질서의 틀 속에서 대북 접근법을 어떻게 설정할지 결정하는 데 가장 유용한 판단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평가에서 가장 핵심적인 항목은 ‘김정은 체제는 개혁·개방에 얼마나 진지한가’라는 것이다.
지난 1년간 북한의 움직임에서 가장 눈에 쉽게 들어오는 것은 두 차례의 장거리 로켓 발사다. 미국의 ‘한반도 관찰자’ 그룹이 김정은에 대해 부정적 견해 일색의 평가를 내놓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조만간 북한이 3차 핵실험 등의 도발을 감행할 것이라는 전망이 대세를 이루고 한·미 새 정부에 강경한 대북 정책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높다. 그러나 로켓 발사가 북한이 보여준 모습의 전부는 아니다. 김정은 체제는 그동안 서로 흐름이 일치하지 않는 상반된 신호들을 동시에 발신했다. 북한 내부에서 복잡하게 뒤섞여 흘러나오는 메시지 가운데 로켓 발사 하나만을 ‘픽업’해 전체를 평가하는 것은 정확한 분석이 될 수 없다.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북한 장거리 로켓 발사 명령을 하고 있다. (경향신문DB)
김정은은 4월에 로켓 발사만 한 것이 아니라 당대표자회를 통해 당·군·정의 최고지위를 확보하고 군 경력이 전혀 없는 최룡해를 군서열 1위 자리에 올렸다. 7월에는 조선노동당 정치국의 결정으로 군부 실세 리영호를 모든 직위에서 물러나게 했다. 당이 군부 수장의 목을 친 이 사건은 북한의 변화라는 관점에서 로켓 발사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진 ‘사변’이다. 1년 전 김 위원장의 운구차를 호위했던 8명의 실세 가운데 군부 핵심인사 4명은 지금 모두 사라졌다. 군부가 독점하고 있던 경제권도 내각으로 이전하고 당에 의한 군부 통제를 강화했다. 김정은은 외국인 투자 관련법을 정비해 해외투자 유치에 적극 나서고 개인이 수확량의 30%를 소유하도록 하는 농업개혁 조치를 내놓기도 했다. 또 해외 문화 유입이 두려워 노동자 송출을 최소화했던 과거와 달리 중국 동북부 지역에 수만명의 노동자를 파견해 외화난을 해결하려고 한다.
지난 1년간 김정은 체제에서 드러난 가장 획기적인 변화는 선군시대가 가고 당 중심의 정치, 경제 우선 정책으로 이동했다는 것, 그리고 예상과 달리 순탄하게 권력 기반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공은 한반도 ‘스테이크홀더’들에게 넘어왔다. 특히 5년간 남북관계를 책임진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의 대북정책은 이명박 정부보다 약간 유연한 정도라는 것 외에 아직 실체가 없다. 그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북한과의 접촉을 통해 김정은 체제의 개혁의지를 정확히 확인해 보는 일이 될 것이다. 집권 초기 새 정부 주변에서 무분별한 대북 강경 발언이 나오지 않도록 메시지 관리를 하는 것도 중요하다. 박근혜 정부가 북한과 접점을 찾으려면 핵문제 우선 해결이나 민족적·이념적 차원이 아닌 경제적 관점의 접근법을 구사해야 가능성이 높아진다. 현재 북한에 가장 절실한 문제는 경제라는 점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그동안 대북정책 결정자, 협상자 그룹에 경제 전문가가 한 명도 없었다는 점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가 남남갈등을 피하면서 국제사회 틀 안으로 북한을 견인할 수 있도록 상호 실용적 경제 협력의 길을 찾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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