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모
1970년대를 풍미한 팝송 중에 ‘그는 나의 형제이기에 짐이 되지 않아(He ain’t heavy, he is my brother)’라는 노래가 있다.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이 쏟아져도 중국만은 유일하게 북한을 옹호하는 장면이 되풀이될 때마다 이 노래가 떠오른다.
동구권 공산진영이 도미노처럼 쓰러지던 시절 북한이 핵무기 개발로 체제 유지를 위한 혈로를 뚫기 시작하면서 국제사회에서 중국 외교가 감당해야 할 부담은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중국은 북한에 대한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혹자는 중국과 북한의 전략적 관계를 들어 중국이 ‘무고한 피해자’가 아니라 ‘의도적 공모자’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시진핑 총서기의 친서를 전달받고 있다. (경향신문DB)
북한이 8개월 만에 다시 장거리 로켓 발사를 예고하자 한반도 주변이 분주해지고 있다. 북한의 재시도는 놀랄 일이 아니지만 그 시점은 다소 의외다. 북한의 미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한국·미국·중국·일본 등의 변화된 국내정치 환경이 자신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기다려보지도 않고 ‘선제 공격’에 나선 북한의 의도를 가늠하기 어렵다. 각국은 발사를 막는 데 일차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지금 쏴야 할 복잡한 사정이 있을 것이라는 어렴풋한 짐작 말고는 왜 지금인지 정확한 이유를 알 수가 없으니 발사 저지는 애초에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결국 관심은 북한의 발사 이후 국제정치적 역학관계 변화에 쏠릴 수밖에 없다.
과거에는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미국의 대응이 주목거리였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미국의 관찰자들은 이번 북한의 로켓 발사에 대한 중국의 대응이 향후 10년 이상의 미·중 관계를 가늠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본다. 중국의 새 지도부가 얼마나 달라진 모습을 보일지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갓 출범한 시진핑 체제의 중국 대외정책이 북한의 돌발행동으로 조기에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지금까지 북한이 핵실험이나 장거리 로켓 발사 움직임을 보였을 때 중국은 매뉴얼을 가진 것처럼 판에 박힌 대응을 했다. 우회적으로 북한에 부정적인 사인을 보내면서 ‘한반도 안정과 평화 유지는 모든 당사국들의 공동 책임’임을 강조했다. 유엔에서 이 문제를 논의하는 장이 열리면 대북 제재에 반대하고 규탄 문구에 적절히 물을 타 맹숭맹숭하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어느 정도 먼지가 가라앉은 뒤 전가의 보도처럼 ‘6자회담 조기 개최’를 꺼내들고 대화를 촉구했다.
중국이 약간의 변화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중국 외교부는 이번에 이례적으로 북한에 ‘신중한 행동’을 요구했다. 지난 4월 발사 때는 유엔안보리 의장성명 문안 조율에서 미국도 놀랄 만큼 물러서기도 했다. 미국은 반신반의하면서도 중국이 과거와 크게 달라진 모습을 보이거나 창의적인 해법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는다. 북한에 대한 실망이 커지겠지만 북한이 가진 전략적 가치 때문에 중국이 근본적인 정책 변화를 모색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이 점에서는 북한과 미국의 생각이 일치하는 것 같다. 중국의 고위급 사절이 북한을 방문해 시진핑의 친서를 전달한 바로 다음날 발사 예고를 한 것을 보면 북한 역시 이번 발사로 북·중 관계의 근본적인 틀이 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진 듯하다.
북한 문제가 미·중 관계를 결정하는 최상위 아젠다는 아니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 대한 중국의 대응은 오바마 2기 행정부가 취할 미·중 관계의 전반적인 톤을 결정하는데 큰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중국이 새로운 미·중 시대를 맞아 주창해온 ‘신형 대국관계’에서 북한 문제는 어느 정도의 위치에 놓여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의외로 빨리 찾아온 것 같다.
'경향 국제칼럼 > 유신모의 외교 포커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특파원칼럼]새 정부, 선제적 대북접근법 제시를 (0) | 2013.01.17 |
---|---|
김정은 통치 1년과 박근혜 (0) | 2012.12.26 |
[특파원 칼럼]지금 미국 공화당에 필요한 것 (1) | 2012.11.14 |
[특파원칼럼]미 의회에 대한 외교력 강화 절실 (0) | 2012.10.24 |
미숙한 미국의 아시아 전략 (0) | 2012.10.0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