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질서를 좌우하는 양대 슈퍼 파워인 미국과 중국이 서로 충돌하는 시나리오는 당사국은 물론 세계 모든 국가에 악몽이다. 지난해 말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연임에 성공하고 중국의 시진핑 체제가 출범하면서 미래의 미·중관계에 전 세계가 지대한 관심을 가졌던 것도 이 때문이다.
대부분의 국제문제 전문가들은 미·중관계가 과거 냉전시대와 같은 전면적 갈등관계로 발전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미국과 중국은 이미 상호의존적 구조로 얽혀 있고 현 상태의 국제질서를 유지해야 한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당국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신형 대국관계’라는 용어 속에는 양국이 경쟁보다는 협력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훨씬 더 많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악수하는 시진핑과 오바마. (경향신문DB)
그러나 미·중이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이를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은 엄밀히 말하면 그렇게 되기를 희망하는 ‘위시풀 싱킹’, 또는 그래야만 한다는 ‘당위’에 가깝다. 미국의 중국 전문가, 정책 당국자들은 사적인 자리에서 실제 미·중관계는 밖으로 드러난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고 털어놓는다. 현재 미·중관계는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아슬아슬하고 앞으로도 양국이 우호적인 협력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가능성도 높지 않다는 것이 이들의 솔직한 견해다.
미·중은 무역·환율 등 경제 문제, 이란·시리아 문제, 인권, 기후변화 등 거의 모든 양자 간 현안과 글로벌 이슈에서 대치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이 오랫동안 준비해왔던 아시아 중시 정책을 구체화하고 중국을 에워싸기 시작하면서 갈등은 더욱 커졌다. 더욱이 양국은 모두 국내적 문제 해결에 사활을 걸어야 할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에 외교적으로 상대를 배려할 수 있는 여유가 없다.
미국의 저명한 중국 전문가 케네스 리버설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지난해 미·중관계 전망에 대해 “양측이 모든 차원의 대화 채널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극대화하지 않으면 앞으로 15년 안에 두 나라는 적대관계로 변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워싱턴의 한 외교소식통은 “일본과 중국이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서 충돌할 경우 미국은 선택의 여지가 없이 중국과 맞서야 할 처지”라고 말했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점은 미·중 모두 ‘리셋’을 원한다는 것이다. 미·중은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양국 관계를 정립하기 위해 서로 협력할 수 있는 이슈를 찾고 있다. 쉬운 문제부터 협력하기 시작해 그 범위를 점차 넓혀가려는 의도다. 이 같은 상황에서 미국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북한 문제가 미·중관계의 ‘리셋’을 위한 접점으로 거론되고 있다. 미·중이 북한 문제에 전략적으로 다른 견해를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큰 틀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라는 일치된 이해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다른 복잡한 현안에 비해 움직일 수 있는 여지가 더 많다는 것이다.
미·중이 뒤늦게나마 북한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선다면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한반도 문제가 미·중의 전략적 논의의 구조 속에서 결정되는 것은 경계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의한 타협의 산물이 한국의 국익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미 국제적 이슈가 되어 버린 한반도 문제에서 한국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한국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흐르는 것은 막을 수 있다. 한반도 문제 논의에 있어서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지, 또 반드시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등을 주변국들에 선제적으로 주지시키는 능동적 외교가 박근혜 정부에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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