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스포츠 스타 리나(李娜·32)는 중국 테니스계의 선구자이면서 반역자란 말을 듣는다. 2011년 메이저대회인 프랑스오픈에서 동양인 최초로 정상에 올랐고, 지난달 호주오픈에서 우승하면서 메이저대회 2승째를 기록했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서 리나의 팔로어는 2000만명을 넘는다. 수억명의 중국 시청자들이 리나의 경기를 지켜보기 때문에 ‘상품적 가치’도 대단하다. 올해 그가 올릴 광고 수입은 200억원에 육박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국가대표도 지낸 리나가 “키워준 조국에 감사하다”는 말을 하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이나 리나는 이를 거부하기로 단단히 마음먹은 것 같다.
호주오픈 우승 후 리나는 유창한 영어로 남편에게 애정과 감사를 표시했고, 상대 선수에게 감사하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호주 매체 헤럴드선은 위트 넘치는 그의 우승 스피치를 사상 최고라 평가했다. 하지만 그의 말 속에 정작 국가는 없었다. 리나의 애국심은 도마에 올랐고, 일부 누리꾼들은 “리나가 중국어를 잊어버렸다”고 한탄했다. 그가 개인주의적이고 애국심을 결여하고 있다는 중국 내 비판은 프랑스오픈 우승 후에도 제기됐다. 상하이 신민만보가 최근 “리나는 우승 트로피를 모을 때 ‘내 조국에 감사하다’는 말을 입에 올린 적이 없다”고 꼬집은 데서도 리나의 애국심 부족에 대한 비판 정서를 읽을 수 있다. 리나를 상대로 한 애국심 논란은 중국 스포츠계에서는 흔하지 않은 일이다. 분열을 가장 두려워하는 중국 지도층은 거대 인구를 통합하기 위해 스포츠를 애국심 고취용으로 활용해왔고, 대부분 유명 선수들은 조국의 의도를 존중해왔다. 그러나 리나는 “조국의 영광을 위해 테니스를 한다고 말하지 말라. 나를 위해 하는 것”이라고 당당히 말한다.
중국의 리나가 호주오픈 테니스 여자단식 결승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환호하고 있다.(출처: AP연합)
리나가 호주오픈에서 우승하고 난 뒤 중국 인터넷에는 10년이 넘은 리나와 관련된 동영상이 돌기 시작했다. 2001년 국내 대회에서 혼합복식 동메달을 딴 리나에게 메달을 걸어준 중국 관리가 그의 뺨을 때리는 장면이 담겨 있다. 당시 혼합복식 파트너는 현재의 남편 장산(姜山)이다. 중국 관리가 그의 뺨을 때린 이유는 분명치 않으나 성적에 대한 실망감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이 장면은 당시 주변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스무 살이 안된 리나에게도 상당한 수치심을 안겨줬을 가능성이 높다. 아무튼 리나는 2002년 중국의 체육 시스템을 박차고 나왔다. 국가 주도의 일방적인 육성 시스템에 반기를 든 것이다. 대학에 진학하며 테니스를 잊었던 리나는 2006년 장산과 결혼했다. 장산은 지금도 리나의 훈련 파트너이자 동반자로 늘 경기장 관람석에서 부인을 응원한다.
유럽과 미국 선수들이 판치는 테니스계에서 리나의 메이저대회 제패는 중국 체육계에 숙제도 던졌다. 그가 중국테니스협회 간섭에서 벗어나 스스로 감독을 선정하고 팀을 꾸려 프로 투어 생활에 나선 게 성공의 요인이란 분석이 만만치 않은 것이다. 국가의 영광을 최우선 삼아 돈을 투입하면서 선수들을 채찍질하는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의미로 보인다. 관영 매체 환구시보가 “리나의 성공을 중국의 국가 체육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로 활용해선 안된다”고 주장한 것도 이 같은 흐름에 대한 반박이다.
호주오픈 준결승에 진출한 후 기자회견에서 리나는 중국 기자들이 훨씬 많았지만 단 3건의 질문만 받았다. 영어로는 25개의 질문을 받아 중국 기자들을 무시했다는 비판을 받아야 했다. “2016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참석할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그때까지 기자를 할 거냐”고 답했다. 직설적인 리나의 성격이 애국심 논란을 확대시키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리나가 조국에 감사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건 중국의 억압적이고 전체주의적 분위기에 대한 그만의 저항으로도 볼 수 있다.
오관철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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