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일본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야스쿠니(靖國)신사를 참배한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는 다시 야스쿠니를 찾지 않았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본인은 후야오방(胡耀邦·1915~1989) 중국 공산당 총서기와의 친분관계를 들었다고 한다. 야스쿠니 참배에 격분한 반(反)후야오방 세력이 그를 공격할 것이고 결국 실각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는 얘기다. 후야오방은 일본과 적극적으로 관계 개선을 추구했던 대표적 지도자로 꼽힌다.
1985년 당시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에 공식참배하고 있다(출처: 연합뉴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처음 총리직에 오른 뒤 2006년 10월 첫 해외 방문국으로 중국을 택했고 당시 냉각됐던 양국관계에 해빙의 돌파구를 마련했다. 후진타오(胡錦濤) 주석 시절 중국은 역사 문제의 비중을 낮추며 일본과 전략적 호혜관계 구축을 시도했다.
지난달 26일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후 중·일관계가 사상 최악의 국면으로 치닫고 있지만 이처럼 화해와 협력을 추구했던 지도자들이 있었다.
아베 총리의 신사 참배는 100% 잘못된 일이다. 중국의 분노에 충분히 공감이 간다. 예컨대 야스쿠니신사에는 1937년 난징(南京)대학살을 지휘한 마쓰이 이와네(松井石根)가 포함돼 있다.
아베가 그에게 고개를 숙여 경의를 표하는 걸 지켜본 중국인들의 마음은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현재 양국 간에는 원색적 비난이 오가면서 감정의 골이 치유하기 힘들 정도로 깊어지고 있다. 중국 언론과 전문가들은 연일 아베 총리를 비난하고 전 세계 외교관들을 동원해 해외에서도 선전전을 펴고 있다.
그러나 중국 내에서도 최근 영국 주재 중·일 대사가 서로를 ‘볼드모트’(소설 <해리포터>에 나오는 어둠의 마왕)에 비유하며 공방을 벌인 것에 유치하다는 반응이 나올 정도로 피로감이 누적되고 있다. 주변 국가들 역시 강대국 간 대결을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
중·일 갈등은 기본적으로 과거 역사를 망각한 아베 총리의 책임이 크다. 그러나 대치가 장기화된다면 중국 지도자들 역시 지나치게 과거에 집착한다는 역풍을 맞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갈수록 중국이 일본을 몰아붙이는 게 어떤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최근 제기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국 지도자들이 국민들의 애국정서를 자극하려고 벼랑 끝 대치로 몰아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은 톈안먼(天安門) 사태와 소련 공산당 붕괴로 공산당의 구심력이 약화될 것을 우려해 전국에 항일기념관을 많이 짓도록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항일을 정통성으로 삼는 중국 공산당에 아베 총리의 신사 참배는 정권 기반을 공고히 할 수 있는 소재란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중국이 한·일 간 틈새를 벌리기 위해 아베 총리를 이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베이징 외교소식통은 “중·일 갈등이 이처럼 장기화될 줄은 생각지 못했다”며 “한국의 입장이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사실 언제 바닥을 드러낼지 모르는 관계가 중·일관계다. 수교 후 역사 문제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본이 역사적 과오를 인정하고 반성하지 않는 이상 동북아의 평화는 늘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중국에도 국제사회의 대국으로서 갈등을 관리할 책임이 있다. 정부끼리 대화가 막히면 민간이 정부를 움직여 대화와 협상을 하도록 해야 하지만 중국 정부는 이를 용인하지 않고 있다.
역사 문제는 중·일, 한·일, 한·중 간의 문제다. 동북아 3국이 역사왜곡과 영토분쟁으로 인한 단절의 벽을 깨기 위해서는 각국의 진지한 노력이 필요하다.
오관철 베이징 특파원 okc@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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