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북한 자극 않는 중국의 ‘속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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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북한 자극 않는 중국의 ‘속내’

by 경향글로벌칼럼 2013. 12. 25.

친중파로 불렸던 장성택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처형 소식에 중국의 당·정은 물론 주류 매체들이 보여준 반응은 매우 차분했다. 김정은식 공포정치, 인권 유린, 북한에 더 이상 개혁·개방을 기대할 수 없다는 비난이 국제사회에서 쏟아졌지만 중국 외교부는 “북한 내부의 일”이란 입장에서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북한 내부 사정에 대해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진 나라가 중국이고, 중국이야말로 북한에 가장 할 말이 많은 나라다. 원유와 식량 지원은 북한의 생존에 큰 역할을 해 왔고, 북한에 가장 많이 투자하고 있다. 핵을 포기하고 개혁·개방의 길로 나가도록 북한을 설득해 온 중국 입장에서 장성택의 처형은 공든 탑이 무너지는 소식일 수도 있다. 북한이 밝힌 장성택의 죄상을 보면 지하자원을 헐값에 팔았다는 등 중국을 자극할 만한 표현도 있었다. 언제까지 북한을 감싸고 쉬쉬해야 하느냐는 여론도 만만치 않았다. 중국 지도층 사이에서도 북한에 대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격앙된 반응이 나오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삭일 뿐 대외적으로는 극도로 절제된 모습을 보였다. 중국 내 상당수 북한 전문가들도 장성택의 부재가 양국 관계에 미칠 파장을 최소화하려는 듯한 분석으로 일관했다.


장성택 처형 뉴스 속보 지켜보는 군(출처 :경향DB)


혹시 중국은 장성택의 처형을 지켜보며 마오쩌둥(毛澤東·1893~1976) 통치 시절 2인자에서 비극적 최후를 맞이한 류샤오치(劉少奇·1898~1969)의 기억을 떠올렸던 것일까? 류샤오치는 자본주의를 추종하는 주자파(走資派)로 몰려 문화대혁명 기간 중 손자뻘 되는 홍위병들로부터 야만적인 모욕을 당했다. 조선중앙통신이 장성택을 두고 “개만도 못한…”이라고 비난했지만 류샤오치 역시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개라는 욕설을 들었다.


아니면 북한 내부의 권력투쟁 사건에 개입하려 했다가 낭패를 당한 사례를 떠올렸을까? 중국이 장성택 처형에 침묵한 이유로 한국전쟁 후 김일성이 미제의 앞잡이란 명목으로 박헌영을 처단하려 하자 마오쩌둥이 반대했지만 말발이 먹히지 않았던 사례를 거론한 전문가들도 있다. 브루스 커밍스는 자신의 저서 <김정일 코드>에서 “중국과 소련의 동지들에게 번갈아 체포된 적이 있는 북한 공산주의자들에게 있어 독립과 자주가 정책적 기조가 되는 것은 그리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라고 적었다. 김정일이 “중국을 절대 믿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이렇게 본다면 중국이 북한 내부 사정에 간섭하고 싶지 않은, 간섭할 수 없는 속사정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중국이 장성택의 처형에 차분했던 이유는 북한 내정을 안정시키고 체제를 존속시키는 것이 중국의 국익에 부합한다는 판단 때문이라고 보는 게 현실적일 듯하다. 많은 전문가들은 북한 내에서 극도로 혼란이 빚어지는 것은 중국에 최악의 상황일 것이라고 지적해 왔다. 북한 난민과 무장병력이 북·중 접경지역을 넘보고, 만약 북한 붕괴 후 한국 주도로 통일이 이뤄지면 중국으로서는 미군이 주둔하는 국가와 처음으로 국경을 접하게 된다.


장성택 처형으로 김정은 체제의 단면이 드러났음에도 북한에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중국의 행동은 이해하지 못할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시사하는 바도 적지 않다. 틈만 나면 북한이 곧 붕괴될 것처럼 자극하고, 실체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우리 일각의 태도와는 대비된다. 북한이 내부 정치투쟁으로 혼란에 빠질 가능성을 상정한 시나리오를 갖추고 대비해야 함은 당연하다. 정부든 언론이든 ‘아니면 말고’식의 감정적 대응으로 북한을 자극한들 우리에게 득이 될 건 없다.


오관철|베이징 okc@kyunghyang.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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