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부양형 캥거루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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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박은경의 특파원 칼럼

부모 부양형 캥거루족

by 경향글로벌칼럼 2019. 3. 27.

‘소명성(蘇明成)식 캥거루족.’

 

현재 중국에서 가장 큰 인기와 화제를 끌고 있는 드라마 <도정호(都挺好)>가 유행시킨 신조어다. <도정호>는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세 남매가 아버지를 부양하게 되면서 불거지는 갈등과 가족 간 화합을 그리고 있다. 소명성은 주인공 가족의 둘째 아들 이름이다. 모범생 형, 여동생과 달리 학업에는 뜻이 없지만 ‘효심’을 내세워 비위를 맞추면서 부모님의 지갑을 열게 한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결혼 자금은 물론 집안 인테리어비, 자동차 구매비용까지 부모에게 손을 벌리는 캥거루족(자립할 나이가 됐지만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기대어 사는 젊은이들)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와 함께 살게 된 그는 형제들의 책망에 “집안 돈 가져다 썼지만 아버지를 모시지 않냐. 온갖 시중을 다 들고 있는데 내가 왜 캥거루족이냐”고 반문한다. 이 대사 때문에 ‘소명성식 캥거루족’ ‘부모 부양형 캥거루족’이라는 말이 생겼다. 집안 재산을 거의 독차지하고 부양자금도 형과 여동생에게 받지만, 아버지 곁에 있기 때문에 면죄부를 받을 수 있다는 소명성식 논리를 지지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만큼 부모를 부양하는 일이 어렵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무남독녀 소황제 자녀들이 느끼는 부양의 부담감, 현실에 맞지 않는 복지 제도, 점점 얕아지는 효 개념 등 다양한 사회문제가 얽혀 있다. 소명성의 가정은 14억 중국인 가정의 축소판인 셈이다.

 

2000년 고령화사회에 진입한 중국은 초고령화사회로 빠르게 달려가고 있다. 2018년 말 중국의 60세 이상 노인 인구는 2억4900만명이다. 국무원 발표에 따르면 2020년에는 2억5500만명 안팎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 중 절반 이상이 독거노인이다.

 

1970~1980년대 중국의 강력한 산아제한 정책을 따른 세대들이 노년기에 접어들면서 부양 부담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1980년대 태어난 외동 자녀들이 결혼한 후 역시 한 자녀를 낳으면서 4명의 부모, 2명의 부부, 1명의 자녀인 ‘421가정’이 보편화됐다. 중국은 부유해지기도 전에 늙었다(未富先老). 효는 사라져가고 있는데 복지제도가 자리 잡기 전에 초고령화사회로 가고 있는 것이다. 부모 세대 부양과 자녀 교육의 부담을 동시에 져야 하는 중간 세대의 스트레스는 상당하다.

 

중국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푸젠, 헤이룽장, 충칭, 쓰촨 등 14개 지역에서 외동 자녀에게 부모 간병 유급 휴가를 준다. 외동 자녀의 부모가 입원하는 경우 1년에 10~20일 정도 사용할 수 있다. 간병 기간 중 회사는 급여, 수당, 상여금을 공제할 수 없다. 많은 예산과 시간이 소요되는 간병 복지 대신 자녀들이 간병을 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한 것이다. 다른 지역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후커우(戶口·호적) 제도 때문에 거주 지역에서 의료 보험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문제도 손을 본다. 자녀들과 도시에서 생활하는 노인들은 거주 지역에서 의료 서비스를 받는 데 제한이 있다. 중국은 지난해 7월부터 도시와 농촌 주민의 기본 양로금 최저 기준을 1인당 매월 70위안(약 1만2000원)에서 88위안(약 1만5000원)으로 상향조정했다. 지방정부 재정 형편에 따라 지급이 달라지는 것을 개선하기 위해 양로보험 기금을 중앙정부가 통합 관리하기로 했다. 중국 물가를 고려할 때 양로금 최저 기준은 터무니없이 낮다. 그만큼 불만도 높다.

 

리커창(李克强) 총리는 최근 정부 업무보고에서 올해 주요 과업으로 노인 복지를 꼽았다. 주간 돌봄, 재활 간호, 식사 및 외출 도움 등 지역 복지 서비스 기관에 조세 비용 감면, 자금 지원 혜택을 주고 신규 주거 단지에는 노인 복지 시설을 세우겠다고 했다. 리 총리는 “어르신들의 노후를 행복하게 해준다면 젊은 세대들도 미래를 기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중국의 미래가 노인 복지 문제 해결에 달렸다.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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