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칭찬 단톡방
본문 바로가기
=====지난 칼럼=====/박은경의 특파원 칼럼

중국의 칭찬 단톡방

by 경향글로벌칼럼 2019. 4. 17.

성적이 안 좋아도, 이성 친구와 헤어져도, 혹은 취업을 못하더라도 자책하지 않아도 된다. 어떤 상황이든 칭찬받을 수 있는 무적의 칭찬 단톡방이 있기 때문이다. 이 단톡방에서 조롱·딴지는 금지다. 누구든 ‘칭찬 좀 해주세요’라고 요청하면 단톡방 멤버들이 무한 칭찬을 보낸다. 중국 대학가를 중심으로 퍼진 ‘콰콰췬(誇誇群)’이다. 콰콰췬에서는 인생 문제부터 소소한 일상까지 모든 것이 칭찬 대상이다.


“친구들은 다 꽃구경 떠났는데 나만 빈 기숙사에서 외롭게 있어. 칭찬 좀 해줘”라고 올리면 “독립심을 키울 좋은 기회야” “면벽 수행으로 인류의 영웅까지 될 수 있어”라는 칭찬과 위로가 올라온다. 


우산을 분실했단 글엔 “사람은 안 잃어버렸으니 최고지” “새 우산을 살 수 있게 됐어!” “휴대폰은 안 잃어버려 여기에 메시지를 보낼 수 있잖아”라고 위로해준다. 무엇을 하든 지지와 격려를 받는다. 


콰콰췬은 개강 직후인 지난달 초 시안교통대학 학생들이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기숙사 방을 쓰는 친구 3명이 컴퓨터가 고장나 낭패를 겪은 친구를 위로하기 위해 만든 것이 시작이다. 불과 몇 시간 만에 중국 모바일 메신저 웨이신(위챗) 단톡방 제한 인원 500명이 다 찼다. 칭화대, 난징대, 푸단대, 저장대 등 여러 학교들로 퍼졌다. 현재 대학별로 수십개의 콰콰췬이 만들어졌다. 친구를 위로해주려는 마음에서 시작된 칭찬 단톡방은 이제 대학 캠퍼스를 넘어 회사, 지역 커뮤니티로 번지고 있다. 


콰콰췬에서 칭찬을 듣고 안정과 힘을 얻었다는 이들이 많다. 대부분 모르는 이들이 건넨 칭찬이다. 가족이나 서로를 잘 알고 있는 친구, 동료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면 해결책을 제시하는 ‘설교’가 많은데, 콰콰췬의 무조건적인 지지가 ‘힐링’을 준다는 것이다. 서로 칭찬을 주고받으면서 생활 속에서 누적된 스트레스가 풀린다. 특히 이전 세대보다 더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지만 정신적으로 기댈 데를 찾기 힘든 젊은 세대들의 필요에 부합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베이징사범대학 자오융 교수는 신화통신에 “인터넷 시대의 특징인 가벼운 사회적 상호작용 현상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콰콰췬에서 이뤄지는 교류가 완전한 진심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또 완전한 거짓이라고 보기도 힘들다. 완전한 진심과 거짓의 중간 정도의 교류는 교감은 원하지만 간섭은 싫어하는 인터넷 세대의 교제 행태에 딱 부합한다. 


반면 영혼을 찾기 힘들고 말장난에만 치우친 칭찬은 무용지물이라는 비판도 있다. 칭찬의 가치가 폄훼되고 있다는 것이다. 진심에서 우러나지 않는 칭찬의 효과는 일시적일 뿐이고, 이런 패스트푸드식 칭찬은 마음을 더 공허하게 할 뿐이라는 우려도 있다.


콰콰췬의 시작이 20대 초반 젊은이들이라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더 치열해진 경쟁에 내몰렸지만 제대로 된 칭찬이나 비판을 해줄 멘토를 찾기는 더 어려워졌다. 지난달 중국 명문대인 상하이교통대 교수가 단톡방에서 지도학생들에게 욕설을 퍼부었다가 뭇매를 맞았다. 전자전기공학과 소속의 이 교수는 지도학생들이 있는 단체채팅방에서 “매일 실험실에 나와 연구해야 하고 주말에도 쉬어서는 안된다. 너희들은 쉴 자격이 없다. 쓰레기, 문맹, 백치다. 너희들이 쓴 것은 다 똥 같다”고 학생들을 몰아세웠다. 스승이라면 단톡방에서 학생들에게 쓰레기라고 욕하기 전에 자신의 교육 방식을 먼저 반성했어야 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동등한 인격을 가진 사제 사이에 일방적 지시와 욕설은 틀렸다. 콰콰췬에서의 무조건적 칭찬도 정답은 아닐 것이다. 온라인 시대에는 칭찬조차 일회용처럼 빠르게 소비되고 버려지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다. 그러나 단톡방이 불법 영상 공유 같은 범죄에 이용되고 있는 요즘, 어떤 식이든 좋은 말만 오간다는 점은 칭찬할 만한 일이 아닐까.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