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에서 연인들 선물로…중국 배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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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박은경의 특파원 칼럼

스탈린에서 연인들 선물로…중국 배추

by 경향글로벌칼럼 2019. 3. 5.

중국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선포한 지 두 달 만에 소련을 방문해 두 달 간 머물렀다. 마오쩌둥의 첫 해외 순방이다. 모스크바로 출발하기 2주 전인 12월1일, 중국 공산당 산둥(山東)지국에 긴급 전보가 도착했다. 전보에는 “소련 스탈린 동지의 칠순을 맞아 당 중앙이 산둥의 배추, 무, 파를 선물하기로 결정했으니 최상급으로 준비하라”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산둥 배추 2500㎏은 다른 선물과 함께 소련으로 건너가 스탈린에게 전달됐다. ‘배추 외교’가 ‘판다 외교’의 역사를 훨씬 앞서는 셈이다.

 

마오쩌둥 주석은 1949년 첫 해외 순방지로 소련을 방문했다. 당시 스탈린에게 줄 선물 중 하나로 산둥산 배추를 준비했다. 사진 인민망

 

배추는 ‘중국의 국민 채소’이자 중국인들의 자부심이었다. 추운 날씨에도 오래 저장할 수 있는 데다 조리법이 다양해 활용도가 높다. 특히 북쪽 지방에서는 가구당 수백㎏씩 배추를 저장해두는 것이 필수 월동 준비였다.

 

‘동양의 피카소’라고 불리는 중국 화가 치바이스(齊白石)도 배추를 자주 그렸다. 잎은 푸르고 줄기는 하얀색인 배추가 청백한 기상을 대유한다고 믿었다. 그도 배추로 월동 준비를 했다. 겨울에 배추가 배달되면 고마움을 담아 배추 그림을 배달부에서 선물 줬다고 한다.

 

계획경제 시대에 배추는 국가 2급 물자로 분류돼 일괄 수매·판매됐다. 겨울 배추가 부족하지 않도록 공급하는 것은 국가의 중요한 민생 업무였다. 베이징은 ‘가을걷이 채소 지휘부’까지 만들었다. 시민들은 이 지휘부를 ‘배추반’이라고 불렀다. 주 업무는 시민 1인당 1일 1근(500g) 배추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당시 베이징 인구는 400만명이었으니 하루 200만㎏의 배추가 필요한 셈이다. 가장의 중요 임무 중 하나도 배추 확보였다. 대부분의 직장에는 배추 휴가가 있었다.

 

배추의 전성기가 끝난 것은 1978년 개혁개방이 계기가 됐다. 시장경제 물결은 남쪽 지역의 다양한 채소들을 북쪽 지역으로 올려보냈다. 유일한 채소였던 배추는 ‘여러 채소 중 하나’로 전락했다. 1989년 배추가 대풍작을 이뤘지만 소비는 되레 줄었다. 정부가 TV와 신문을 동원해 배추를 ‘애국 채소’로 둔갑시키고 홍보에 나섰다.

 

중국에서는 배추를 백채(白菜)라고 한다. ‘배추(白菜)는 채소(百菜)의 왕’이라는 말은 있지만 실제로는 푸대접을 받고 있다. 굉장히 저렴한 가격을 껌값이라는 부르는 대신 배추값이라고 표현한다.

 

최근에는 화물 논란까지 겪었다. 후베이(湖北)에서 한 승객이 배추 두 포기를 들고 고속버스에 탔다가 200위안(약 3만3000원)의 벌금을 물었다. 한 경찰이 고속버스에는 화물 반입이 안되는데 채소는 화물이라고 문제 삼았기 때문이다. 배추가 수하물이냐 화물이냐를 두고 중국 누리꾼들이 시끌시끌했다. 여론이 들끓었고 결국 경찰은 벌금 부과를 취소하고 해당 승객에게 사과했다. 

 

난징농업대 연구팀이 개발한 장미배추로 만든 다발. 사진 펑파이

 

한 때 나라를 대표하는 국례(國禮) 물품으로 쓰였던 중국 배추가 이래저래 치이고 있다. 푸대접 받고 있는 배추 살리기에 여러 방법이 나왔다. 중국의 신선 배추 수출은 미비하지만 가공식품인 김치 수출량은 점점 늘고 있다. 2016년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발효로 관세율이 0.2%포인트 인하된 후 이듬해부터 김치 수출이 27만t, 29만t으로 늘었다. 한국의 연간 배추 생산량의 약 27%에 달한다.

 

품종 개량을 통한 차별화, 고수익 창출도 꾀하고 있다. 난징농업대 연구팀은 지난달 장미배추를 선보였다. 겉은 초록색, 안은 노란색의 배춧잎이 장미꽃잎처럼 벌어져 장미배추라고 부른다. 일반 배추보다 추위에 잘 견디고 비타민C 함량이 높으며 맛이 달다. 밸런타인데이와 화이트데이에는 이 장미배추 다발이 연인 선물용으로도 쓰인다고 한다. 장미배추 다발과 함께 담긴 카드를 보니 ‘노란 장미 대신 노란 장미배추로 집에 가서 요리해줄게’라고 적혀있다.

 

<베이징|박은경 특파원 yam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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