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산티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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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불타는 산티아고

by 경향글로벌칼럼 2011. 8. 14.
칠레의 대학 교육은 세계에서 가장 비쌉니다. 1인당 국민소득(GNP)의 72%에 해당하는 비용이 들어가지요.” 칠레대 경제학자 마르셀 클로드가 말했다. “모든 교육 제도의 중심축은 이윤 논리로 조직되어 있습니다. 세계은행이 지적했듯이, 대학 졸업생이 노동시장으로 나갈 때면, 연봉의 174%에 해당하는 빚을 안고 있습니다. 이는 미친 짓입니다. 일년 내내 일해서 번 돈은 고스란히 은행으로 들어갑니다. 추산에 의하면 졸업생 1인당 평균 4만달러의 빚이 있습니다.”

 
칠레 대학생들이 수도 산티아고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 경향신문 DB


지난 세 달 동안 칠레 산티아고 거리는 학생 데모(시위)로 몸살을 앓았다. 8월9일의 데모에는 10만명이 운집할 정도로, 피노체트 독재가 끝난 이래 가장 격렬한 소요를 벌였다. 중간계층 가정에서도 비싼 학비에 항의하며 냄비를 두드리며 동참했다. 교원노조도 노총도 여기에 가세했다. 최루탄 가스가 도심에 난무했고, 곳곳에 방화와 상점 약탈도 관찰되었다.

중세 기사단을 방불케 하는 기마경관들, 최루탄과 물 폭탄을 난사하는 장갑차에 대항하여 학생들의 바리케이드와 냄비 데모대가 맞섰다. 미주인권위원회는 경찰의 강경 진압을 비난했다. 500명 이상의 학생들이 체포되었고, 부상자도 속출했다. 시위는 수도를 넘어서 지방 중심도시인 콘셉시온, 발파라이소, 칼라마, 라세레나, 아리카에서도 동시 다발적으로 터졌다.

“무너진다, 무너진다, 피노체트 시대 교육!” 데모대의 구호에서 보듯이, 이들이 겨냥한 것은 피노체트 시절에 이뤄진 신자유주의 교육개혁이었다. 안타깝게도 민주 정부 20년을 지나면서도 그 유산은 해체되지 않았다. 이미 ‘펭귄(중·고등학생)들의 데모’가 2006년에 있었다. 교통비 상승과 학비 부담에 항의한 데모였다. 사회당 출신 바첼렛 대통령도 교육 환경을 별로 바꾸지 못했다.

피노체트 시절에 교육 개혁은 철저하게 이윤 규범으로 진행되었다. 중등교육은 시·군단위로 이전되었다. 그리고 모든 교육에 대한 비용은 수익자에게 일차적으로 부담시켰다. 

중등교육이 지방정부로 이전되자, 지역격차에 따라 교육의 질적 차별도 커졌다. 월사금이 450달러가 되는 도심의 사립중등학교를 졸업해야 명문대로 진학할 가능성이 높다. 우수한 학생이라도 공립학교를 다니면 대입자격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한다. 빈익빈 부익부는 고스란히 교육제도를 통해 강화되었다.

교육 ‘아파르헤이트(Apartheid)’가 제도화되었지만, 월급 1000달러를 받는 중앙부처 공무원도 두 자녀를 사립중등학교에 보낼 수 없다. 대학 교육비도 월 500달러에서 700달러가 드니 중산층 부모 외에는 조달이 어렵다. 많은 경우 학자금 대출을 받지만, 취업을 해도 빚더미의 악순환이 기다리고 있다.

거리에 나선 학생들의 요구 사항은 공교육 정상화와 등록금 무상 공급이다. 이들은 국가가 보장하는 사회적 권리로서 교육을 재정립하고 헌법에 명기할 것을 요구한다. 중등교육을 지방정부에서 교육부로 이관하고, 교육재정을 획기적으로 확충하여 등록금을 무상으로 해달라고 외친다. 오랫동안 안정적인 성장세를 구현한 칠레 경제가 이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보수주의자인 피녜라 대통령의 대응은 줄곧 강경했다. 그는 항공회사를 경영하면서 큰 돈을 번 재벌 출신이다. “인생에서 공짜는 없다. 누군가 그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상위층 10%에 공짜 교육을 제공한다면, 가난한 사람을 포함한 사회 전체가 세금으로 부담하는 것이다.” 그는 여전히 수익자 부담원칙을 고수하며, 40억달러의 교육기금 확충과 학자금 대출금리의 소폭 인하로 무마하려 한다. 

하지만 분노에 찬 학생들과 학부모들을 달래기에 너무 늦었다. 현재 칠레 교육비에서 정부 부담률은 15% 정도이고, 85%는 가계가 부담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가운데 국가 부담률이 가장 낮은 축에 속하는데, 그 총액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0.3%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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