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체제의 디폴트 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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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자본주의체제의 디폴트 오나

by 경향글로벌칼럼 2011. 8. 7.
김준형 | 한동대 교수·국제정치학

지난주 미국은 가까스로 국가채무 불이행, 곧 디폴트 위기를 넘겼다. 8월2일 데드라인을 놓고 공화당의 정부 지출 삭감안과 민주당의 국가채무한도 상향 및 증세안을 놓고 워싱턴 정가는 요동을 쳤다. 디폴트에 빠질 경우 미국과 전 세계에 끼칠 재난적 결과를 양당 지도부도 알고 있기에 결국 타결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국가부채 상한 증액 협상을 잠정타결했다고 발표한 뒤 회견장을 나가고 있다. 
| 2011.08.02 | AFP연합뉴스 | 경향신문 DB

그러나 미국의 재정적자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벌써부터 타협안에 담긴 긴축정책으로 인해 성장률 저하와 경기침체 장기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들끓고, 미국의 신용등급이 하락하고, 세계경제는 함께 혼란에 빠졌다. 이제 이념갈등까지 가세하고 있다.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버락 오바마가 공화당 극단주의자들의 협박에 비참하게 굴복한 것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러한 비판과 분석들은 나름의 가치가 충분히 있다. 그럼에도 과연 이번에 미국이 겪고 있는 위기가 대통령의 결단이나 정당 간의 책임공방, 더 나아가 미국의 정책 변화 수준에서 일어나는 일인가라는 점에는 큰 의문부호를 던질 수밖에 없다. 보다 더 거시적이고 구조적인 원인에 주목해야 한다.

미국은 1990년대 초 냉전이 종식된 이후 약 10년간 미국 역사상 어떤 10년보다 더 큰 부의 축적을 이루었다. 무소불위의 유일 패권이 된 미국의 세계전략은 세 가지로 압축된다. 자본주의의 세계화, 민주주의의 세계화, 대량살상무기의 비확산이다. 도전자 없는 단독패권 구조는 그러나 미국으로 하여금 속도와 규모에 있어 너무 큰 무리수를 두게 만들었다. 

신자유주의의 무차별 확산에다, 2001년 9·11 테러를 계기로 미국은 군사주의의 과잉 팽창에 빠져들었다. 특히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쟁은 미국을 빠르게 고갈시켜 왔다. 2008년 터진 금융위기는 이렇게 자본주의의 모순과 일극 패권체제의 불안정성이 합쳐진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글로벌 수요의 지속적 감소와 유로존의 반복되는 재정위기는 물론이고, 중국을 비롯한 신흥시장 역시 경기둔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3년이 지나도록 해결 기미가 없는 경제위기는 자본주의가 지닌 근본 모순의 발현이다. 산업혁명 이후 제조업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 자본주의는 서비스업으로, 그리고 금융으로 무게중심을 옮기면서 이윤 확대를 향해 달려왔지만 한계상황에 다다랐다. 

자본주의가 찾아낸 금융을 통한 이윤 확대는 그야말로 ‘대박’ 아니면 ‘쪽박’인 불안정성을 동반했다. 오바마가 지난 3년간 팔을 걷어붙이고 노력한, 대규모 공적자금 투입을 통한 케인스식 경기부양은 뉴딜시대엔 통했지만, 장기적 이윤율 저하라는 구조적 장애물 앞에서 무력함만 증명하고 있다. 

이는 정책 수준에서 오바마 정부가 양적완화를 추진하거나, 공화당이 정부 지출 삭감을 통해 재정건전성을 회복하는 정도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경제공황이나 세계대전에 버금가는 파괴를 통한 새로운 이윤 창출이 아니면 근본적인 해결은 없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물론 중국, 러시아, 일본까지 정권교체기를 맞는 2012년은 국제정치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해가 될 것이다. 위기상황에서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국익 추구를 최우선으로 하는 공격적 민족주의 행보가 효과적이라는 것을 권력자들은 본능적으로 체득하고 있다. 국익을 노골적으로 앞세우는 대외정책은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대결과 긴장 국면을 조성할 가능성이 높다. 

오늘날과 같이 깊어진 상호의존의 시대에는 과거와 달리 국가 간 협력과 조정을 통해 위기를 통과할 것이라고 믿는 낙관론이 있지만, 인류역사에서 공생의식이 이기심을 이긴 적은 거의 없다. 더욱이 자본주의는 이러한 이기심을 끊임없이 정당화하고 고무시켜온 체제가 아닌가? 정상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미국과, 미국의 허점을 파고들려는 도전자들 사이에 알력과 다툼은 갈수록 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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