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미 CIA 고문보고서로 드러난 추악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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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사설]미 CIA 고문보고서로 드러난 추악한 진실

by 경향글로벌칼럼 2014. 12. 10.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9·11 테러 용의자 감금·고문 실태를 조사한 미 상원 보고서가 공개돼 충격을 주고 있다. 보고서는 그간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끔찍하고 잔혹한 고문이 자행됐고, 고문 효과를 터무니없이 과장하거나 축소·은폐해온 ‘추악한 진실’을 고발하고 있다. 이를 계기로 인권보다 중요한 안보는 존재하지 않으며, 그 어떤 이유로도 고문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30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테러에 대한 분노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고문을 통해 테러를 막겠다는 생각은 용납할 수 없다.

상원 보고서에서 드러난 CIA의 고문 실태는 상상을 불허하는 수법과 극단을 치닫는 잔혹성으로 차마 입에 올리기 어려울 정도다. 예컨대 용의자 아부 주바이다는 관처럼 생긴 상자 안에 서있는 상태에서 11시간 이상 잠 안 재우기와 얼굴에 물을 붓는 물고문을 당했다. 테러 배후조종자였던 칼리드 세이크 모하메드도 183회의 물고문을 받아 익사 직전까지 갔다고 한다. 일부는 빗자루로 성고문을 당했으며 견과류와 소시지 등 점심용 음식을 항문을 통해 주입하는 고문을 받았다. 총기를 머리에 대고 ‘모의처형식’을 열거나 가족 살해나 성폭행 위협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테러 주범 오사마 빈 라덴의 행방 등 정보를 얻기 위한 것이었지만 효과는 미미했다고 보고서는 평가한다. ‘향상된 심문기법’이란 이름의 고문을 당한 39명 중 7명이 어떤 정보도 내놓지 않았으며, 일부는 고문을 당하지 않고도 중요하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인권운동가 ‘고문 항의’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10일 ‘세계 인권의 날’ 기념행사가 열린 가운데 한 인권운동가가 미 중앙정보국(CIA)이 자행한 고문에 항의하는 뜻으로 수감자 분장을 한 채 무릎을 꿇고 있다. _ AP연합


미국에서 보수층을 중심으로 ‘고문 역할론’이 다시 제기되고 있으나 이는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려는 것과 마찬가지다. 상원 보고서는 지난 5년간 작성 과정을 거치면서 중앙정보국과 조지 부시 전 대통령 등 보수층의 집요한 방해공작을 이겨내고 마침내 햇빛을 보게 됐다. 고문을 폭로하는 것은 안보에 위협이 되지 않으며, 이를 억누르는 행태가 오히려 안보에 해를 끼친다는 것을 미국은 이번에 목격하게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고서 공개는 반인륜에 맞서 싸운 양심의 승리였다고 볼 수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직후 테러 용의자들을 불법 감금하고 고문을 자행한 쿠바 관타나모 기지 내 수용소를 폐쇄하고 고문 금지 행정명령을 발표한 바 있다. 이번에도 정부 차원에서 테러용의자 고문 실태를 낱낱이 밝히고 책임자 처벌 등을 통해 국제 사회의 신뢰를 얻기 바란다. 안보를 내세워 인권을 유린하는 행위는 지구상에서 영원히 추방해야 한다. 이것은 미국만이 아니라 모든 국가가 명심할 양심의 명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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