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개방경제 중립국 북한’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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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정동칼럼]‘개방경제 중립국 북한’은 어떨까?

by 경향글로벌칼럼 2014. 12. 4.

통일은 현실적이고 매력적인 목표인가? 통일 논의가 박근혜 정부에 들어와서 통일 대박론, 통일준비위원회의 창설 등으로 더욱 전면에 등장하였다.

남북관계의 악화로 통일의 가능성이 높지 않은데 평화통일을 내세우는 것이 상당한 미스터리다. 아마도 그 미스터리의 뒤에는 북한이 곧 붕괴할 것이라는 희망 사항이 자리 잡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국가 비전으로서 근대화, 민주화, 선진화라는 담론들의 약발이 다 떨어져서 이제는 무언가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줄 것만 같은 통일 담론을 정치적으로 내세우는 느낌도 지울 수 없다.

북한이 붕괴될 것이라는 예상은 번번이 틀렸고,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통일에 대한 관심이 줄어드는 것은 고사하고 오히려 통일이 빡빡한 삶에 더 부담만 주는 피하고 싶은 일로 여기는 사람도 많다. 즉 지금 통일은 현실적이지도 않고, 또 매력적이지도 않다. 남북한 관계는 풀리지 않고, 북한이 붕괴될 가능성도 별로 없고, 또 통일이 된다 하더라도 남북한 격차가 심한 현재 북한을 우리의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북한은 우리가 떠안아야 할 매우 이질적인 짐이다. 그래서 통일이 정말 우리가 바라는 것이라면 이제 통일을 현실적이고 매력적인 것으로 바꾸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과연 그러한 방법은 없을까?

최근 변화하는 국제정세를 곰곰이 따져보다가 21세기 국제질서의 새로운 원칙을 하나 발견하게 되었다. 현 국제질서의 정식회원으로서 인정받기 위한 조건이 과연 무엇인가와 관련된 원칙인데, 우리는 흔히 개방된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를 갖추어야 현 국제질서의 회원으로서 인정받는다는 생각을 하지만, 실제로 따져보면 회원 자격은 개방된 시장경제를 가지고 있는 국가라면 다 주어진다.

국가가 왕조체제이거나 권위주의 국가이거나 상관없이 개방된 시장경제를 가지고 있으면 21세기 국제질서의 회원이다. 개방된 시장경제이면서 왕조체제 국가는 두바이와 아부다비가 있는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이 대표적인 사례이고, 개방된 시장경제이면서 권위주의인 국가는 과거 동아시아 4마리의 용, 그리고 지금은 싱가포르와 같은 국가들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21세기 국제질서의 정규 회원이 못 되는 국가는 쿠바나 북한과 같은 폐쇄적인 사회주의 국가이거나,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아닌 중동의 이슬람 국가들이다. 이들이 이른바 “악의 축” 국가가 되거나 “불량 국가”가 된다.


이러한 21세기 국제질서의 원칙을 고려할 때 통일을 현실적이고 매력적으로 만드는 새로운 상상력은 바로 북한을 싱가포르와 같은 권위주의 개방경제로 유도하고, 북한 주민의 생활 수준이 어느 정도 우리와 비슷해질 때 국민적 합의에 의해 통일을 추진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안에는 물론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는 북한 핵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이고, 두 번째는 북한의 인권문제를 어떻게 할 것이냐의 문제이다.

첫 번째 질문의 답은 북한을 스위스형의 중립국가로 인정해 주고 북한 핵과 교환하는 방안이다. 중립국가는 전 세계와 상호 불가침협정을 맺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기 때문에 핵이 없어도 싱가포르식 개혁·개방과 스위스형 중립화를 북한이 추진한다면 북한은 정권안보를 얻고, 국제사회는 개방된 시장경제 국가를 얻게 된다. 북한만 중립국이 되면 강대국 사이에 버퍼 존은 유지되고 한·미동맹이 해체될 압력도 크지 않다. 스위스에서 유학한 김정은도 스위스 형 중립화에 대한 이해를 쉽게 하리라 생각한다.

한편 현실적으로 북한 인권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인권 가해자의 처벌도 중요하지만 우선적으로 북한 주민들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인 환경이 개선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의 북한이라면 아무리 가해자 처벌을 주장하고, 압박을 가해도 북한 인권이 개선되기보다는 문을 더욱 꽁꽁 닫아 버릴 것이다. 오히려 중립화로 외부 위협을 제거하면 외부의 위협을 이유로 인권을 탄압할 가능성이 더욱 낮아질 것이고, 개방경제로 경제와 삶의 질이 높아지면 인권탄압이 지금보다 훨씬 줄어들 것이다. 우리에게는 비교적 부유한 개방경제와 단계적으로 통일한다는 사실이 상당히 매력적인 것으로 다가올 수 있다.


이근 |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싱크탱크 미래지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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