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반인륜적 사우디 언론인 피살사건 국제사회가 나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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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사설]반인륜적 사우디 언론인 피살사건 국제사회가 나서야

by 경향글로벌칼럼 2018. 10. 23.

사우디아라비아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피살사건이 전 세계를 충격으로 몰아넣고 있다. 터키 언론 등의 보도에 따르면 사우디 암살팀 요원들이 주이스탄불 사우디 총영사관에서 카슈끄지의 신체 일부를 자른 뒤 7분 만에 참수했고, 시신 훼손까지 한 정황이 드러났다. 사건의 배후로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지목되고 있다. 국제 여론이 들끓자 사우디 당국은 뒤늦게 유족들에게 조의를 표하는가 하면, 상부의 지시 없이 자국 요인들이 벌인 독자적인 작전이었다며 ‘꼬리자르기’를 시도하고 있지만 국제사회의 비난은 커지고 있다. 

 

사우디 명문가 출신인 카슈끄지는 미국 유학을 거쳐 중동 각지에서 특파원으로 활동해왔고, 알카에다 지도자인 오사마 빈라덴과의 인터뷰로 명성을 얻었다. 그는 빈라덴의 극단적인 반미 테러리즘을 반대하는가 하면 2011년 아랍 민주화운동인 ‘아랍의 봄’을 지지했다. 카슈끄지는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집권 초기의 개혁적 태도에서 벗어나 철권을 휘두르며 반대파를 무자비하게 탄압하자 왕실을 비판하면서 미운털이 박혔다. 지난해 9월 미국으로 망명한 뒤 중동 국가들의 병폐를 지적하고 민주화를 촉구하는 글을 미국 언론에 여러 차례 기고했다. 그의 마지막 칼럼도 ‘아랍에서의 표현의 자유’를 강조하는 내용이었다. 진실과 자유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불의에 저항해온 용기있는 저널리스트의 죽음을 애도한다.

 

카슈끄지 살해사건과 관련해 미국의 어정쩡한 태도가 유독 눈에 거슬린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카슈끄지 실종 2주 만에 암살 사실을 인정했지만 사우디 왕실의 배후 의혹에는 침묵해왔다. 21일(현지시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로 철저한 진상규명을 다짐했지만, 의지가 강해 보이지는 않는다. 사우디는 미국 무기의 최대 수입국이고, 미국은 매일 88만배럴의 원유를 수입할 만큼 사우디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가 높다. 이란 견제와 중동 내 헤게모니 유지를 위해서도 사우디를 끌어안아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맹방이라도 백주에 언론인을 자국 해외 공관에서 살해하는 야만에 눈을 감는 것은 미국의 정의와 가치에 어긋난다. 카슈끄지 죽음의 진상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하는 것은 중동의 민주주의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국제사회도 진상규명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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