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북·일은 전진하는데 정부는 뒷짐지고 있을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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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사설]북·일은 전진하는데 정부는 뒷짐지고 있을 텐가

by 경향글로벌칼럼 2014. 6. 1.

북한은 일본인 납치 피해를 전면 재조사하고, 일본은 대북제재를 해제한다고 북·일 양측이 그제 합의문을 발표했다. 북한은 납치 여부로 북·일 간 이견이 있었던 실종자에 대해 포괄적으로 조사해 생존자가 있으면 일본에 돌려보내기로 했다. 북한이 이례적으로 일본 측의 요구를 전폭 수용한 것이다. 일본은 그 대가로 조사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2006년 이래 계속된 대북제재를 풀고, 인도주의적 지원과 관계 정상화를 추진키로 했다. 이는 2002년 9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발표한 일본인 납치자 문제 해결과 관계 정상화를 위한 평양선언으로의 복귀이자, 양측의 실천 정도에 따라 그 이상의 관계로 발전할 수 있는 길을 연 합의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북한이 실제로 일본이 납득할 만한 결과를 내놓을지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기존 입장을 철회하면서 일본 요구를 전폭적으로 수용한 것 자체는 충분히 주목할 만한 사건이다. 무엇보다 북·일이 오랜 현안이던 인도적 문제를 풀고 적대관계를 개선하기로 했다는 점은 양국 관계, 나아가 동북아 평화를 위해 의미 있는 전진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합의가 북·일과 다른 이웃의 관계가 어느 때보다 악화된 상황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선양 도착한 북일 적십자회담 북한 대표단 리호림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회 서기장 (출처: 연합)


일본은 과거사·영토 문제 및 우경화로, 북한은 북핵 문제와 대남도발로 각각 한·일 및 남북관계를 갈등 상황에 빠뜨린 책임이 있다. 그 때문에 얼마나 긍정적 파급 효과를 낼지 장담할 수가 없다. 자칫 일본이 한·일관계 개선을, 북한이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기보다 방치하거나 회피하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다. 북·일 접근의 배경에는 각자가 처한 동북아 고립 상황을 탈피하자는 전략적 고려의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일 및 남북 관계 악화는 북·일 접근의 원인일 뿐 아니라, 결과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은 한반도 평화, 나아가 동북아 안정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

북한과 일본은 주변 관계 악화를 활용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지 않으려면 남북 및 한·일 관계 개선에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 한국 정부 역시 성찰해야 한다. 통일부는 북한이 일본에 대해 그런 것처럼 납북자·이산가족 상봉 등 남북 간 인도적인 문제에도 호응할 것을 북한에 촉구했다. 이는 남이 깔아놓은 멍석에서 놀겠다는, 무임승차 심리를 드러낸 것이다. 이런 때일수록 정부의 대북정책 실패가 뚜렷이 부각된다. 정부가 남북 현안을 풀고자 한다면 북·일 합의에 편승할 생각 말고 직접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 공짜 점심은 없다. 정부는 경직된 자세를 버리고 남북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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