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돌이 이야기꾼과 작별 이후
본문 바로가기
경향 국제칼럼

떠돌이 이야기꾼과 작별 이후

by 경향글로벌칼럼 2014. 5. 25.

지난달 세월호의 침몰사고 즈음 지구 반대편 멕시코시에서는 콜롬비아 태생의 유명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라틴아메리카인들의 파란만장한 삶과 선뜻 믿기 어려운 역사를 신비롭게 그려낸 <백년 동안의 고독>으로 1982년 노벨문학상을 받고 ‘문학의 마술사’라는 영예를 얻었다. 그는 어쩌다 운이 좋아 뽑혔다고 했지만 그에 앞서 노벨문학상을 받은 칠레의 파블로 네루다에게 이 소설은 <돈키호테> 이래 가장 위대하고 경이로운 스페인어 작품이었다.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기적 같은 현상이 현실의 사건과 기묘하게 결합되는 이른바 ‘마술적 사실주의’의 대가였다. 그의 소설 속에서는 수년 동안 폭풍이 몰아치고 삼년 동안 피의 비가 내리며 수세기 동안 독재자가 생존하고, 연인들이 반세기의 시차를 딛고 열정을 불태우며, 시신들이 부패하지 않는다. 이런 표현 기법이 새로운 창조의 샘으로 자리 잡은 까닭은 독재자, 혁명가, 외세가 얽혀 다투는 정치적 굴곡, 오랜 빈곤과 질병 등 라틴아메리카 역사의 격렬한 대립과 비극적 참사를 담아내는 데 실증이나 합리적 설명 등 종래의 서술 방식이 지닌 한계가 뚜렷해보였기 때문이다.

원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권력자들이 감추려는 진실을 용기 있게 파헤친 열혈 기자였다. 그는 1955년 콜롬비아 정부가 실종된 해군 구축함에서 살아 돌아온 영웅으로 선전한 선원을 취재한 뒤 그 선박이 소비재 밀수품을 가득 실은 채 항해하다가 폭풍우 속에서 허술한 결박이 풀려 크게 기울고 끝내 침몰하게 되었다는 특종을 터뜨렸다. 그 보도로 당시 독재자 구스타보 로하스 피니야 장군의 분노를 산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유럽으로 피신했으며 1961년 멕시코시로 옮긴 뒤 별세할 때까지 타향살이를 지속했다.

18개월에 걸쳐 집필한 대하소설 <백년 동안의 고독>은 이렇듯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고 소중한 이들을 떠나보낸 떠돌이의 고통과 향수 속에서 탄생했다. 또한 이 소설은 노벨상 수상 연설문 ‘라틴아메리카의 고독’에서 언급한 대로 “거대하고 고삐 풀린 현실” 속에서 그것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그가 아끼는 것을 기억하고 되살려낸 애정과 집념의 결실이었다. 어린 시절에 매료된 외할머니의 기막힌 유령 이야기를 발판 삼아 켜켜이 쌓인 수많은 꿈을 풀어내고 감춰진 슬픈 사연을 들려준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떠난 뒤 작가의 손길을 기다리는 지상의 이야깃거리는 틀림없이 늘어났을 것이다.

후안 마누엘 산토스 콜롬비아 대통령(왼쪽)과 엔리코 페냐 니에토 멕시코 대통령(오른쪽)이 세계적 문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장례식에 참석 (출처 :AP연합뉴스)


대다수 한국인들에게 세월호의 비극은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마주해야 했던 “거대한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하다. 더욱이 “미개한 국민”이나 “가난한 집 아이들”과 같이 정서적 공감 능력이 파괴된 발언이 속출하는 한국 사회의 “고삐 풀린 현실”은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또 다른 소설 제목대로 ‘미로 속’에 갇혀 갈팡질팡하고 황폐해진 자화상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그래서 어느 실종자 가족이 남겼다는 글 한 토막은 가슴을 더 아리게 한다. “그동안은 가난하지만 행복한 가정이었는데, 널 보내니 가난만 남았구나.” 그들이 떠나고 나서 지상의 행복은 분명 눈에 띄게 줄어들었을 것이다.

종교사상가 함석헌은 이렇게 물었다. “탔던 배 꺼지는 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인 적도, 그렇게 양보한 적도 없었다. 반면 대통령의 눈물을 자아낸 세월호의 의로운 이들은 먼저 세상을 떠났다. 나는 어떻게 먼저 떠난 이들을 되살리는 산 자의 의무를 감당할 수 있을까? 그동안 어떤 가치를 소홀히 여기면서 생존해왔고 지금 어떤 상태에 이르렀는지 되돌아보면서 나와 주변의 개선을 위해 더 알차고 성실하게 살아가리라 다짐해본다. 그리하여 그들을 기억하고 그들과 대화하는 데 힘을 보태길 기원한다.


박구병 | 아주대 교수·서양현대사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