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산하 통일준비위원회는 그제 2차 회의를 열고 남북협력 사업, 통일 구상을 논의했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은 회의에서 북한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지원과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구체적으로 복합 농촌 단지 사업, 비료지원, 생활환경 개선을 위한 부엌 개조, 마을 도로 정비 등 민생 인프라 사업을 거론했다. 비무장지대 세계생태평화 공원을 위해 기초 설계 작업, 주변 지역 도로 정비 등 연계 발전 계획을 추진해서 북한도 동참할 수 있도록 이끌어 나가야 한다는 점도 밝혔다. 통일준비위는 북한에 10년간 100만호 주택을 짓는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 회의 장면은 마치 1960, 70년대 남한의 주택 개량을 포함한 개발사업을 논의하는 것처럼 보인다. 대통령이 관련 부처 장관들을 불러 계획을 확정하면 관료들이 알아서 집행하고 결과를 보고하는 일상적 회의를 연상케 하는 것이다.
물론 이 회의가 북한과의 협력에 필요한 사전 준비를 하는 것이라면 그렇게 부정적으로 볼 이유는 없다. 문제는 현실이 북한과 협력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데 있다. 지금 북한과 그런 수준의 협력사업을 추진한다는 건 꿈도 꾸기 어렵다. 이런 구상들은 박 대통령이 발표한 드레스덴 구상에도 일부 포함되기는 했지만 북한은 이미 흡수통일을 위한 것이라며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힌 바 있다.
한마디로 북한을 대상으로 하는 개발사업이지만 북한 없이 준비되고 있는 것이다. 대화와 협력의 상대, 궁극적으로 통일의 한 주체인 북한이 빠진 이런 통일 준비라면 통일의 희망을 구현할 수 없다. 북한에 흡수통일을 준비한다는 신호를 주는 것 말고 다른 효과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흡수통일을 전제로 한 통일준비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지적을 새겨듣지 않고 있다.
13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통일준비위원회 제2차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남한이 북한을 접수할 대상이 아니라 통일의 주체로 여긴다면, 그걸 증명해 보일 방법이 있다. 5·24 대북 제재 조치 철회로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남북 교류와 협력을 본격화하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통일준비위에 이런저런 당부와 지침을 내릴 때가 아니다. 그 반대로 통일준비위가 대북정책이 통일의 방향과 맞는지 점검하고 수정할 것을 대통령에게 건의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대규모 회의를 열어 통일 이후 북한 복지·연금 문제를 논의하는 것이 왜 공허해 보이는지 진지하게 숙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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