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상원이 31일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을 가결하면서 14년간 이어져온 브라질 좌파 정권이 막을 내렸다. 중남미 좌파 진영의 맏형 역할을 해온 브라질 노동자당 정권의 추락은 양극화와 빈곤 해소를 내세우며 집권해 온 다른 중남미 좌파 정권들에 위기감을 불어넣을 것으로 보인다. 호세프 탄핵의 교훈을 얻으려면 좌파의 집권 배경, 정치체제의 후진성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탄핵당한 지우마 호세프 전 대통령은 알보라다 대통령궁에서 상원의 탄핵을 ‘의회 쿠데타’라 비난하며 “테메르 정부는 강력한 야당과 마주하게 될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브라질리아 _ 신화·AP연합뉴스
호세프가 탄핵을 당한 표면적 이유는 재정적자를 감추기 위해 국영은행 자금을 불법으로 전용한 뒤 이를 돌려주지 않는 방식으로 재정회계법을 위반했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브라질 정치권의 권력다툼에 희생된 측면이 강하다. 호세프 반대 진영이 정치권 비리 수사 정국에서 벗어나려 좌파 정부를 전복시키려 했기 때문이란 분석이 많다. 실제 브라질 유력 정치인 상당수가 부패 의혹에서 자유롭지 않다. 심지어 민주운동당 소속 미셰우 테메르 대통령도 수백만달러의 정치자금을 수수하고 불법 에탄올 조달 사건에 연루돼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부패 혐의자들이 부패를 이유로 호세프를 탄핵한 것이며 의회 쿠데타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호세프의 리더십 부재, 룰라 전 대통령 등 노동자당 인사들의 부정부패, 최악의 경제난도 탄핵 국면의 바탕에 깔려 있다. 정당 난립으로 연정을 구성할 수밖에 없는 브라질 정치체제의 취약성도 문제였다. 탄핵을 주도한 세력은 노동자당의 연정 파트너인 민주운동당이었다.
정상적 선거과정을 거치지 않은 호세프의 낙마를 두고 무분별한 좌파 정권의 포퓰리즘 탓이라고 단순화하긴 어렵다. 브라질에서 좌파가 집권할 수 있었던 것은 신자유주의에 따른 양극화에 대한 사회적 불만이 컸기 때문이다. 브라질 노동자당은 집권 후 교육·보건·주택 등 다양한 분야에서 부의 재분배를 추구해 왔고 수천만명이 빈곤에서 탈출했다. 문제는 과도하게 원자재 수출에 의존하는 경제 구조를 바꾸지 못한 좌파 정권의 무능력과 정치적 부패에 있었다. 호세프 낙마가 불평등과 양극화 해소라는 좌파적 가치의 몰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좌파든 우파든 정치를 투명하게 만들고 시민들의 삶의 질 개선을 위해 고통스러운 개혁에 나서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벼랑 끝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다른 중남미 좌파 정권뿐 아니라 한국 정치권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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