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유산은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를 지닌 유산’을 가리킨다. 유네스코
세계위원회(WHC)는 “세계유산은 후손에게 물려줄 자산이므로 우리들의 삶과 영감의 원천”이라고 했다. 그런 측면에서 지금까지
등재된 1007건(161개국)의 세계유산 가운데 절대다수는 긍정적인 유산들이었다. 하지만 다 그런 것은 아니다. 1979년 등재된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그것이 바로 ‘부(負)의 세계유산(Negative heritage)’이다. ‘부의
세계유산’은 기억하기 싫은 역사라도 절대 반복돼서는 안된다는 뜻의, 이른바 반면교사의 상징물이라 할 수 있다. 폴란드는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세계유산으로 신청하면서 “나치 독일의 반인간적 범죄행위의 증거이자 인간의 야만성을 상기시키는 주요 장소”라고 못박았다.
그렇다면 6월 말 열릴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세계유산 등재가 유력시된다는 ‘일본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군’은 어떨까. 물론
일본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처럼 ‘부의 유산’으로 등재하고자 한다면 하자가 없을 것이다. 규슈와 야마구치 등 후보지역은 6만명에
가까운 한국인이 일제강점기에 강제징용된 곳들이다. 나가사키 조선소에서는 원폭투하로 1800명 이상의 조선인이 떼죽음을 당했다.
하시마는 조선인 수백명이 해저 1000m 탄광에서 하루 12시간씩 강제 노동에 시달린 곳이었다. 아우슈비츠 못지않은 ‘부의 유산’
자격을 갖춘 셈이다.
일본의 메이지시대 건축물 등을 통해 당시 생활사를 보여주는 메이지무라 (출처 : 경향DB)
하지만 일본은 메이지 시대 산업 근대화의 유산이라는 점만 꼽았다. 조선인이 떼죽음당했고, 침략전쟁의 전초기지였던 ‘부의 유산’들이
동양 최초로 근대화를 이룬 자랑스러운 세계유산으로 둔갑한 것이다. 하기야 일본은 1996년 미국·중국 등의 반대를 무릅쓰고
히로시마 원폭돔을 세계유산으로 등재시킨 바 있다. 일본은 당시 침략전쟁의 가해자임은 쏙 빼고 원폭의 피해자라는 점만 부각시켰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일본의 부끄러운 역사를 지우는 ‘세탁장’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터져나오는 이유이다.
정부는 일본의 등재 추진 방침에도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다가 허를 찔렸다. 지금부터라도 세계유산위원회 회원국(21개)을 대상으로
일본의 등재 책동을 봉쇄하기 위한 적극적 외교전을 펼쳐야겠다. 이참에 대상 유산들을 일본의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을 낱낱이 고발하는
‘부의 유산’으로 바꿔 등재해야 한다는 점을 부각시킬 필요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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