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참화를 피해 고향을 등진 시리아, 리비아 등 중동·아프리카 난민들의 유럽행 여정은 전쟁보다 더 참혹하다. 지난달 26일 시리아 난민 71명은 헝가리에서 냉동트럭을 타고 오스트리아 국경을 넘다 질식사했다. 시신은 고속도로 갓길에 버려졌다. 이튿날엔 리비아를 떠나 이탈리아로 향하던 난민선 2척이 뒤집혀 짐칸에 있던 200명이 떼죽음을 당했다. 이렇게 죽은 난민이 올해 들어서만 2400명에 이른다. 2차대전 후 최악의 난민사태다. 난민들은 이렇게 죽어가는데 유럽 국가들은 동·서로 나뉘어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시간만 보내고 있다. 문명국가를 자임하는 유럽의 모습이라고 하기 어렵다.
난민 발생을 원천적으로 막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러나 사선을 넘은 난민들이 유럽 땅에서 떼죽음 당하는 것은 명백히 유럽국가들의 책임이다. 특히 난민 신청을 거부하는 헝가리와 크로아티아 등 동유럽 국가들의 책임이 크다. 이 국가들은 난민 유입을 막는 것도 모자라 들어온 난민까지 밀어내고 있다. 그 때문에 난민들은 궁여지책으로 밀수꾼들에 의존해 국경을 넘게 된다. 헝가리는 국경에 장장 175㎞의 레이저 철조망까지 치고 있다고 한다. 독일 등 서유럽 국가들의 난민 분담으로 해법을 찾는 듯하던 난민문제가 꼬인 것도 이들 동유럽 국가 때문이다.
헝가리 군인들이 난민 유입 방지용 장벽을 설치하고 있다._경향DB
동유럽 국가들은 “난민들은 서유럽으로 가기 위해 우리나라에 온 만큼 우리가 책임질 일이 아니다. 그들을 되돌려보내야 한다”고 고집하고 있다. 난민이 무슬림이라는 이유도 댄다. 국제규범 위반이자 국가로서의 책임을 방기한 행위다. 동·서 유럽 간 갈등이 격화되면서 유럽의 통합 정신까지 흔들리고 있다. 국경을 허물어 자유로운 왕래를 보장하고, 단일화폐가 통용되는 거대 자유무역시장 유럽연합(EU)의 존재 이유가 의문시되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난민 해결은 이제 특정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전 유럽의 공통과제다. 모든 국가는 인도적 차원에서 난민을 수용해야 한다. 하루가 멀다하고 자국 안에서 죽어가는 난민을, 자국 사정을 내세워 수용을 거부하는 것은 문명국가가 할 일이 아니다. 동·서 유럽의 국가들은 하루빨리 연대해 난민 쿼터제 합의 등 문제를 함께 풀어야 한다. 이는 하나의 유럽을 지향하는 유럽국들의 미래가 걸린 문제이기도 하다. 오는 14일 열리는 EU 긴급 내무장관회의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출발점이 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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