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빗나간 예측과 쌓이는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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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국제칼럼]빗나간 예측과 쌓이는 과제

by 경향글로벌칼럼 2016. 10. 17.

콜롬비아 정부와 반군조직 콜롬비아무장혁명군이 체결한 평화협정에 대한 10월2일의 국민투표는 예상외의 결과를 낳았다. 필자는 지난달 칼럼에서 국민투표가 사실상 상징적인 절차라고 확언했다. 투표에 앞서 수차례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매번 찬성이 최대 20%포인트쯤 우세한지라 가결에 어려움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콜롬비아 정부나 외국의 유력 언론은 평화협정의 승인을 기대했다.

 

8월 말 콜롬비아의 시장조사업체 다텍스코가 발표한 결과는 가장 근접한 예측으로 판명됐지만, 그 역시 찬성(31.5%)이 반대(30.1%)를 근소하게 앞설 것으로 내다봤다. 찬성 의견이 최소한 유권자의 13%에 해당하는 450만표를 넘기면, 과반수에 미치지 못해도 ‘단순 다수’로 평화협정이 승인될 것이라 여겨졌다. 극단적으로 말해 유권자의 87%가 기권하더라도 13%가 찬성하면 협정은 통과될 터였다. 우려의 대상은 찬성 여론의 패배가 아니라 오히려 기권율이 높을 가능성이었다. 한 여론조사기관은 투표 전 마지막 조사를 통해 기권율이 65%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평화협정은 찬성 49.8%, 반대 50.2%로 부결됐다. 유권자의 40%인 약 1300만명이 참여한 투표에서 표차는 6만표 이내였다. 이로써 양측 지도자가 탄피를 녹여 만든 펜으로 공식 서명한 297쪽의 평화협정문은 일주일 만에 난감한 처지에 놓이게 됐다. 또 “평화협정 체결을 정의에 어긋난 것으로 간주하거나 투표에서 반대표를 행사할 이들이 많아 보이진 않는다”는 필자의 글귀는 섣부른 예단이 되고 말았다. 충격적인 결과라는 대다수 외신의 반응에 동병상련할지라도 독자 여러분께 송구스러울 뿐이다.

 

9월26일 후안 마누엘 산토스 콜롬비아 대통령은 카르타헤나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존 케리 미 국무부 장관을 비롯한 외빈을 맞이했다. 이들은 역사적인 평화협정의 공식 서명을 축하하고자 모두 흰색 과야베라(셔츠)를 입었다. 자국민에게 평화협정의 의미를 더 진지하게 설명하면서 국민투표 가결에 총력을 쏟기보다 국제적 성원에 기대어 샴페인을 일찍 터뜨린 격일까. 그동안 평화협정 체결에 반대해온 알바로 우리베 전 대통령은 게릴라 대원들이 범죄행위에 걸맞은 징역형을 수용해야 하고 공직에 등용되면 안된다는 두 가지 원칙을 역설하며 정의에 관한 논쟁에서 기선을 잡았다.

 

평화협정 부결이 산토스에게 정치적 타격을 입히고 정국 전반을 불투명하게 만들지 모른다는 전망이 제기되는 가운데 또 한 차례 반전이 일어났다. 10월7일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50년 넘게 지속된 내전을 끝내려는 확고한 노력을 인정해 산토스를 2016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국내의 반발과 국제적 찬사가 교차하는 시점에 그의 앞에는 만만찮은 과제들이 쌓이고 있다.

 

사실 평화협정은 상징적인 절차였고 실질적인 논의는 이제부터라고 하겠다. 특히 무엇이 더 충족될 필요가 있는지 폭넓은 논의를 통해 부결된 평화협정의 세부사항을 조정해야 할 것이다. 평화협정이 선거 없이 각각 5석의 상·하원 의석을 배분하는 등 ‘황금 낙하산’을 투하하면서 반군에 지나치게 양보하고 관대했다든가, 전투에서 정치로 노선을 바꿨지만 반군조직이 여전히 사회주의 체제 수립을 기본 목표로 삼고 있다든가, “내 아이에게 모든 것이 용서될 수 있다고 가르치진 않을 것”이라는 강력한 반대 여론, 진지한 사과와 용서를 구하는 절차가 필요하다는 희생자 가족들의 요구, 그리고 50여년간 파괴된 기반시설과 사회적 관계망의 재건 등 적잖은 난관이 버티고 있다.

 

나아가 노르웨이의 평화학자 요한 갈퉁이 정리한 대로 조직적인 집단 폭력의 부재를 뜻하는 소극적 평화를 넘어 협력, 조화, 회복, 정의가 실현된 상태를 의미하는 적극적 평화에 이르기까지 콜롬비아인뿐 아니라 온 인류가 감당해야 할 과제가 너무 버거운 듯하다.

 

박구병 | 아주대 교수·서양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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