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과 프랑스를 잇는 해저 유로터널이 영국으로 밀입국하려는 난민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수천여명의 난민들이 연일 터널의 프랑스쪽 입구인 항구도시 칼레에서 터널을 지나는 화물차와 열차 등에 몰래 올라타 영국행을 감행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두 달 새 9명의 난민이 교통사고와 감전 등으로 목숨을 잃었다. 말 그대로 목숨을 건 탈출 행렬이다. 영국과 프랑스 내무장관이 긴급 대책을 논의했지만 유로터널에 대한 보안을 강화한다는 게 전부다. 난민들이 처한 절박한 상황에 비해 너무나 안이한 대책이다.
목숨 건 밀항 지난 12일 지중해에서 난민을 싣고 유럽으로 가던 배가 침몰해 난민들이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 사진은 난민선 근처를 지나던 독일 운송회사 오피로크연안운송(OOC) 소속 화물선에서 촬영한 것이다. 난민들은 이 화물선에 의해 대부분 구조됐다._AP연합뉴스
이번 탈출 풍경은 그동안 누적돼온 유럽의 난민 문제가 극단적으로 표출된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올 들어서만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들어온 난민은 18만5000여명에 달한다. 이 순간에도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 등 북아프리카에서부터 시리아 등 중동,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서 탈출을 감행하는 행렬은 줄지 않고 있다. 유럽에 안착한 이들 난민들이 다시 영국으로 가려는 이유는 프랑스 등 유럽연합 국가들의 난민 홀대 때문이다. 톨레랑스의 나라 프랑스도 사르코지 정권 등을 거치며 난민신청 절차를 까다롭게 했고 지원도 줄였다. 수용시설도 모자라 난민의 절반은 길거리에서 생활하고 있다. 참다못해 영국행을 결심한 난민들이 인구 7만의 도시 칼레에만 5000여명이 몰려 있고, 지금도 매일 수백명의 난민이 새로 유입되고 있다. 일자리를 잡기 쉽다는 점도 난민들이 영국으로 가려는 이유다. 독일에서는 난민들을 향한 폭력이 늘면서 난민들이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고 있다. 살 수 있는 곳을 찾아 끝없이 유랑해야 하는 게 이들 난민의 현실이다.
이번 사태에 대해 영국과 프랑스는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영국은 프랑스가 난민들의 영국행을 방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프랑스는 영국이 난민들에게 지원금 등 복지혜택을 후하게 주는 바람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볼멘소리나 하고 있다. 최근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난민신청을 받아달라는 소녀의 청을 매정하게 거절해 구설에 올랐던 것처럼 독일 역시 난민문제를 외면하고 있다. 국가는 다른 국가로부터 보호를 거부당해 긴급 구제를 요청해온 난민들을 보호할 책임이 있다. 망망대해를 건너 구사일생으로 당도한 유럽에서 난민들이 또다시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현실을 유럽국가들은 더 이상 방관해서는 안된다. 문제 해결을 위한 실질적인 논의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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