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만에 이란과 서방의 핵협상이 타결됐다. 순조롭게 이행되면 중동 내 핵개발 위협이 크게 잦아든다. 1979년 이슬람 혁명과 테헤란 미 대사관 점거 사건 이후 국교가 단절됐던 미국과 이란 간에 36년 만에 화해하는 전기가 마련됐다. 이란은 수십년간의 서방의 제재에서 벗어나 피폐해진 경제를 재건할 수 있게 됐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대화와 협상을 통해 절충안이 도출되면서 핵문제에 대한 평화적 해결 모델이 제시된 사례다.
하지만 반발도 거세다. 미 의회를 장악하고 있는 공화당과 친이스라엘계 의원들은 ‘나쁜 협상’이라며 의회 비준을 거부할 것을 천명했다. 이스라엘은 이번 협상을 ‘역사적 실수’라고 평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수니파 아랍 국가들도 미국과 이란의 화해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중동 내 성장 잠재력이 가장 큰 이란이 중동 내 새로운 패권국가로 부상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한 이란과의 핵협상은 미국의 대중동 정책의 두 축, 즉 반(反)이란 그리고 친(親)이스라엘 정책을 역행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의회의 반발과 이스라엘 및 친미 아랍 국가들의 반대에도 오바마 행정부는 이란 핵협상을 밀어붙였다.왜 오바마 행정부가 이란 핵협상에 그토록 적극적이었을까? 핵군축을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백악관 입성 2개월 만인 2009년 4월5일 오바마 대통령은 체코 프라하에서 “핵무기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역사적 선언을 했다. 그날 새벽 북한은 탄도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 만약 핵무기 없는 세상을 위했더라면 미국은 북한 핵문제를 우선적으로 다뤘어야 한다. 이란은 단 한번도 핵무기를 만들겠다고 언급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기뻐하는이란핵협상타결주역들_ 경향DB
핵협상 타결의 또 다른 배경으로 미국의 중동 전략도 언급되고 있다. 시아파인 시리아 집권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의 퇴진, 시아파인 이라크 중앙정부의 안정화, 시아파가 주도하고 있는 예멘의 후티 반군과의 협상에서 시아파 종주국 이란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시각이다. 아프가니스탄의 안정화, 그리고 테러조직 이슬람국가(IS)의 격퇴에도 이란의 긍정적 역할이 기대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란이 미국의 의도대로 움직여줄지는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보다 큰 틀에서, 미국의 적극적 핵협상 추진은 아시아중시전략(Pivot to Asia)의 일환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포석인 것이다. 이란의 중국화를 차단하기 위해서다. 36년간의 미국 제재, 2006년 이후 유엔 차원의 제재, 그리고 2011년 이후 한국을 포함한 서방 정부의 독자적 제재로 이란 시장이 중국에 급속히 잠식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특히 2011년 이후 대이란 투자는 중국이 거의 독점해왔다. 이란은 21세기 가장 중요한 에너지 대국이다. 현재 최대 원유 생산지인 걸프지역과 차세대 에너지 보고인 카스피해를 모두 가지고 있는 나라가 바로 이란이다. 또 인구, 자원, 군사 등 분야에서 패권국가의 조건을 모두 갖춘 나라다. 이런 이란이 중국과 정치·경제적 혈맹관계로 나아간다면, 즉 현재의 제재 상황이 10년 정도 지속된다면 미국도 두 국가를 떼어놓기 어렵다. 이란과 중국이 혈맹관계를 구축하면 미국의 중동 내 이권은 물론 세계 정치역학이 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인공섬을 만들어 남중국해에서 영토를 확장하려고 하자 미국은 일본의 군사대국화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중국이 파나마 운하 3배 규모의 니카라과 운하 건설을 추진하는 등 중남미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하자, 미국은 쿠바와의 관계를 정상화했다. 중국이 아프리카 지부티에서 미군 기지와 마주보는 곳에 해군기지 건설을 추진하자, 미국은 아프리카 외교를 강화하고 있다. 이란이 중국의 중동 내 교두보가 되는 것을 막고자 미국은 이란과의 관계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과 미국, G2 간의 경쟁이 이제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서정민 |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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