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시티(The City)’는 런던을 지칭한다. 영국 중앙은행과 세계적인 금융회사들이 모여있는 ‘런던 특별행정구역(The City
of London)’을 줄인 것이다. 현대 금융제도의 상당수가 이곳에서 탄생했기 때문에 지금은 런던 금융계 전체를 일컫기도 한다.
런던이 금융의 중심지로 부상할 때 ‘더 시티’에 두 개의 신문이 출현한다. 1884년 창간한 파이낸셜뉴스와 4년 뒤 ‘정직한
금융가의 친구, 부도덕한 도박꾼의 적’을 자임하고 나선 파이낸셜타임스(FT)다. 두 신문은 ‘더 시티’의 주도권을 놓고 경쟁하다
1945년 FT라는 이름으로 합쳤다. 전후에는 새 금융중심지 뉴욕 월가를 대표하는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세계 최고의 경제신문
자리를 놓고 경합한다. 출판그룹 피어슨으로 경영권이 넘어간 뒤에도 FT는 1950~1960년대 주식투자 붐을 타고 계속 성장했다.
분홍색 종이에 인쇄된 FT 기사를 읽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영국인들에게는 하나의 자랑거리였다. 1982년 FT가 ‘No FT,
no comment(FT를 안 읽었으면 얘기하지 마)’라는 광고 카피를 내놓은 배경에는 이런 자부심이 있다. 부수는 WSJ나
닛케이의 4분의 1밖에 되지 않았지만, 국제적인 기업과 금융기관, 각국 정부의 고위정책 결정자 등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끼치는
영향력은 더 크다는 것이다. 시장경제 논리를 옹호하는 논조에 불만을 가진 독자들도 이 신문의 품격과 격조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발행하는 월간지 닛케이트렌디 _경향DB
그 FT가 어제 일본의 경제신문 니혼게이자이(닛케이)에 매각됐다. 피어슨의 존 팰런 CEO는 “FT가 새로운 환경에서 언론의
소임을 다하면서 상업적으로도 성공하려면 (닛케이라는) 글로벌·디지털 뉴스 기업의 일원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온라인
시대를 맞아 신문 부문은 닛케이에 팔고, 모그룹은 본업인 교육·출판에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가장 성공적으로 온라인 환경에 적응해온
신문임에도 불구하고 FT가 매각되는 것을 보면서 새삼 디지털 바람의 위력을 실감한다. WSJ와 워싱턴포스트에 이어 FT까지
매각되면서 세계 정상급 신문 중 최근 주인이 바뀌지 않은 곳은 뉴욕타임스(NYT)밖에 없다. 폴 발레리의 시구가 스쳐간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이중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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