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와 성찰] 밴쿠버의 ‘브로큰 할렐루야’
본문 바로가기
현장에 가다 /지난 시리즈

[사유와 성찰] 밴쿠버의 ‘브로큰 할렐루야’

by 경향글로벌칼럼 2010. 3. 5.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단이 혁혁한 성과를 거두어 흥분과 기쁨 속에 며칠을 지냈다. 폐막식은 별로였지만 개막식은 인종과 지역을 초월한 세계인의 잔치다운 구성을 보였고 몇 장면은 매우 감동적이었다.

개막식 공연 끝 부분에 ‘평화의 노래’가 연주될 것이라고 한 뒤 소개된 노래 제목에 나는 깜짝 놀랐다. 그것은 ‘할렐루야’였기 때문이다. 할렐루야는 ‘신께 영광을’이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로 유대교와 기독교에서 사용되는 말이다. 이런 제목의 노래가 어찌 다양한 종교를 가진 이들이 참여하는 올림픽에서, 그것도 평화의 노래라는 타이틀로 불릴 수 있는가. 이건 아니다 싶었다.

연합뉴스 제공


잠시 후 K D 랭이라는 여가수의 입을 통해 흘러나온 노래는 우리나라에서도 히트한 만화영화 <슈렉>에 삽입되었던 ‘할렐루야’였다. 인터넷을 뒤져보고 알게 된 내용에 따르면, 이 노래는 캐나다의 유명한 가수 레너드 코헨이 1984년에 만들어 처음 부른 것으로 그동안 200명이 넘는 가수들이 리메이크를 해온, 최고의 팝송 가운데 하나다. 특히 이 노랫말의 남다른 깊이 때문에 그 유명한 밥 딜런도 애창했다고 한다.
 
여기서의 할렐루야는 차갑고 깨져버린(브로큰) 외로운 할렐루야이다. 이 할렐루야는 특정 종교와 무관하게,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모든 실존을 걸어 부르는 노래, 절대자를 향해 부르는 노래를 가리키는 은유이다.


절대자를 향한 찬미의 노래

그 의미는 두 가지로 해석된다. 첫째 의미와 연관해 노래 가사에 등장하는 인물은 기독교와 유대교가 함께 사용하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다윗이라는 인물이다. 그는 이스라엘 국가를 건설한 왕이다. 하지만 그는 어느날 우연히 보게 된 유부녀를 사랑하고 임신을 시킨 뒤, 그 남편을 전장에서 죽게 만들었다. 간음과 음모와 살인을 저지른 그가 신을 향해 부른 할렐루야는 어떤 것이었을까? 그것은 깨진, 가증스러운 할렐루야인 것이다.

가사에는 “아마도 신이 하늘에 계실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내가 사랑으로부터 배운 것은 당신을 능가하는 자를 쏴 죽이는 방법뿐”이라는, 밥 딜런이 좋아했다는 구절이 나온다. 우리는 내가 사랑하는 이들의 성공을 바라면서 그를 능가하는 자를 어떻게 하면 거꾸러뜨리고 죽일 수 있는가를 열심히 가르치고 있지 않은가. 이것이 성공을 향한 이 시대 최고의 가르침이 아니던가.

이러한 ‘브로큰 할렐루야’는 팔레스타인 사람들과의 공존을 거부하는 이스라엘의 찬미 소리이고, 정적을 쓰러뜨리고 정치적 성공을 이루어낸 정치가들의 노래이며, 진정 아파하는 이웃을 외면하고 자신의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는 큰 교회들의 찬송가가 아니겠는가. 이런 브로큰 할렐루야를 신이 즐거워할 것인가.


또 다른 의미는 이렇다. “내가 최선을 다했지만 그것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었고, 그래서 모든 것이 잘못되어 버린다 해도 나는 오직 할렐루야만을 입에 머금고 노래의 신 앞에 서리라”는 가사의 한 구절처럼, 성실히 노력했으나 힘이 부족해 성공하지 못한 이들의 할렐루야 또한 브로큰 할렐루야이다.

인생 가운데 경쟁은 불가피하며 패배자는 항상 존재하게 마련이다. 코헨은 이런 브로큰 할렐루야나 승리자의 할렐루야는 모두 같은 가치를 갖는다고 역설했다. 누구든 생명에 대해 깊은 사랑으로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면, 성공을 하든 실패를 하든 상관없이 그들의 노래는 모두 아름답다는 것이다.


뉘우치고 용서를 빌 때 참 의미

브로큰 할렐루야의 이러한 이중적 의미 때문에, 이 노래는 올림픽에 어울리는 평화의 노래가 맞는 것 같다. 그런데 이 두 의미는 서로 연결된다. 첫번째 할렐루야를 부르는 이들이 뉘우치고 그 길을 돌이킨다면 말이다. 다윗이 현자 나단의 질책을 듣고 크게 뉘우치고 용서를 빌었던 것처럼, 그런 돌이킴이 있을 때에만 두 의미의 할렐루야는 하나가 된다. (참고로 내겐 이 노래를 가장 잘 불렀다는 랭보다 코헨의 할렐루야가 더 좋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