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와 성찰] 한 해의 끝에 생각하는 ‘레볼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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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한 해의 끝에 생각하는 ‘레볼루션’

by 경향글로벌칼럼 2009. 12. 18.
2009.12.18 경향신문


내가 과연 잘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할 때는 무슨 특별한 계기가 주어진 때이다. 가볍게 찾은 병원에서 돌연 말기 암 진단을 받았을 때, 그래서 지금까지 의미 있고 중요하다고 싶었던 일들이 순식간에 무의미해지는 경우가 그러한 때일 것이다. 3년을 넘게 투병생활을 해 오다 세번째 개복수술을 앞두고 <죽음이 눈뜨게 한 삶>이라는 책을 펴낸 김성찬은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기 위해 좋은 생각을 하며 이 글을 쓰면서 보낸 시간이 행복했다”고 쓰고 있다. 병은 고통이지만, 그것을 통해 자신의 삶을 근본적으로 돌아보게 된 것은 축복이라는 말이다.

일상에서 시간은 시계바늘이 원을 그리며 돌아가듯 한없이 반복할 것처럼 느껴진다. 이런 반복은 우리에게 권태를 느끼게 한다. 그러다가 문득 우리의 삶이 무한히 계속되는 원운동이 아님을 느낄 때 우리는 당황하게 된다. 인생은 시작과 끝 사이의 선과 같음을 깨닫고 이를 통째로 돌아볼 때가 바로 삶의 의미를 성찰하게 되는 순간이다.

출처: 경향신문 웹DB


혁명은 질서로의 복귀와 회복

하지만 무슨 특별한 계기가 없어도 연말이 되면 사람들은 지난 한 해의 삶을 돌아보며, 내가 과연 제대로 살아오고 있는 것인지를 묻게 된다. 연말은 내게 마치 시간이 끝나는 것처럼 다가오기 때문이다. 사실 한 해의 시작과 끝이라는 관념은 인간의 작위적인 구분일 뿐이다. 일 년이란 지구가 원운동을 하면서 도는 궤도의 한 점을 임의로 설정하고 그곳으로 지구가 한 바퀴를 돌고 다시 그 자리로 왔을 때까지의 시간을 말한다. 그러므로 한 해의 첫 날과 끝 날을 구분하는 것은 원의 한 점을 잘라 직선으로 놓고 보는 상상력의 산물인 것이다.

그런데 흥미있는 것은 지구의 원환운동을 일컫는 천문학 용어가 레볼루션, 곧 혁명이라고 번역되는 단어라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 원환운동을 의미하는 천문학의 용어가 세계의 변혁이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것일까? 레볼루션, 즉 혁명이라는 말이 정치적 의미를 갖고 사용된 것은 17세기의 서구였다. 그때의 혁명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새로운 것의 창출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이미 정해져 있는 질서에로 복귀하는 행위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즉 혁명은 복구와 회복을 의미하는 말이었던 것이다.

크롬웰 혁명 이후의 영국에서는, 혁명을 통해 얻은 것은 “다시 찾은 자유”라고 선언되었다. 원래 신이 인간에게 부여했던 자유를 혁명을 통해 회복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어법의 배경에는, 인간의 영향력을 벗어나서 존재하는, 인간이 거역할 수 없는 어떤 법칙적인 것이 존재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혁명은 구질서를 끝내고 새 세계를 도래케 하는 것이지만, 그 새로운 세계란 창조된 세계가 아니라 근원적으로 존재하는 참된 질서가 회복된 세계인 것이다.

한 해를 마감하는 이 시점에 우리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삶의 의미를 새해의 반복적인 일상 속에서 다시 망각하게 되더라도, 우리가 본래의 궤도에서 그리 멀리 벗어나지 않게 될 것이다.

2009년은 국내에서는 용산사태, 해외에서는 이스라엘에 의한 가자 폭격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 해가 저물어가는 이 시점까지도 그 일들은 해결되지도, 나아지지도 않고 있다. 이런 일들은 처음부터 본궤도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나가 있는 일들이었다.

용산참사의 현장인 서울 용산구 남일당 건물이 철거되는 모습 (출처: 경향신문 웹DB)


본궤도에서 멀리 벗어난 ‘용산’

지구가 원운동을 하다가 원래의 그 자리로 돌아오는 이 연말에 우리에게는 원래의 질서가 어떤 모습이었는지에 대한 생각과, 거기에 우리의 삶을 조율하는 혁명의 자세가 필요할 것 같다. ‘용산’이라는 단어와 더불어 생각해야 할 가장 근본적인 것이 ‘신도시’나 ‘분양가’가 될 수 없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이런 일들에 대해 가장 근본적으로 생각해야 할 것을 생각하는 것, 이것이 지금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혁명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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