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근 칼럼]트럼프가 북핵 비관론을 잠재울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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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

[이대근 칼럼]트럼프가 북핵 비관론을 잠재울 기회

by 경향글로벌칼럼 2019. 2. 13.

미국 민주당 의원 13명은 지난달 29일 미 국방장관 대행에게 편지를 보내 한·미 연합훈련을 재개하라고 촉구했다. 훈련이 핵 제거를 압박하면서도 외교적 노력은 해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지지부진하나마 그동안 북·미대화가 지속된 건 훈련 유예 덕분이다. 한반도 화해의 물꼬를 튼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는 훈련을 미뤘기 때문에 가능했다. ‘선 비핵화 후 제재 해제’라는 미국의 완고한 태도에도 북한이 대화를 포기하지 않는 것 또한 훈련 유예 때문이다. 훈련 유예는 북한에 대한 미국의 유일한 성의 표시였고, 협상 동력이었다. 훈련 재개는 협상을 깨는 최후통첩이 될 것이다. 당연히 외교적 노력을 해친다. 댄 코츠 미국 국가정보국장은 같은 날 의회 청문회에서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 같지 않다고 밝혔다. 핵무기를 체제 생존에 대단히 중요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북한이 비핵화의 조건으로 외교관계 정상화, 제재 해제, 훈련 중단을 내세운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핵 폐기 조건을 놓고 이제서야 북·미 간 본격 협상 중인데 그는 협상 조건이 있다는 사실을 비핵화 의사가 없는 증거로 삼았다. 이상한 논리다.

 

북한이 여전히 핵 관련 활동을 하는 것도 핵을 포기하지 않을 근거로 들었다. 이에 조엘 위트 전 미 국무부 북한담당관은 ‘38 NORTH’ 기고문에서 자신이 미·소 간 핵군축 협상에 참여했던 경험을 들어 반박했다. 군축 협상 중 미·소 모두 핵무기 개발을 계속했다고 한다. 협상 실패에 대비하면서 협상력도 높이기 위해서였다. 그게 대체로 협상하는 방식이다. 협상 무용론과 비핵화 불가론은 훈련 재개 주장처럼 반트럼프의 당파성에 기인한 비논리적 주장이거나, 종전선언을 통해 미군 철수 혹은 한·미동맹 해체를 노린다는 음모론적 발상이 대부분이다. 정부 기관조차 북한에 대한 맹목적 불신에 사로잡혀 앞뒤 안 맞는 보고서를 낼 정도라면, 민간 차원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막연한 반북 감정과 북한 불신에 기댄 주장이라서 쉽게 반증할 수 있는, 설득력 없는 견해들이 서로 지지하고 섞이고 뭉치면서 상당한 힘을 발휘한다. 사정이 어떻든 이런 현상은 싱가포르 1차 북·미 정상회담 8개월이 지나도록 실질적 비핵화를 못한 결과임을 부정할 수 없다. 1차 회담 때와 별로 다르지 않은,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의 풍경도 불가론을 강화한다.

사람들은 무용론·불가론에 얼마나 허점이 많은지가 아니라, 비핵화가 얼마나 진전되었는지에 관심을 둔다. 아무리 허구라 해도 세상을 지배하는 건 그런 것이다. 김정은이 속마음을 꺼내 보여주지 못하는 한 이 엄연한 현실을 피할 순 없다. 사실 인내심 있게 비핵화를 낙관하던 사람들도 점차 지쳐가고 있다. 북핵 협상은 중대 기로에 놓여 있다. 비관론을 잠재우고 낙관론에 다시 불을 붙이지 못하면 핵 협상의 앞날은 어둡다. 이 어둠을 걷어내는 유일한 해법은 김정은이 상당한 수준의 비핵화 조치를 하는 것이다. 미국과의 동시적 행동을 통해서건, 통 큰 양보로 선제적 행동을 하건, 어떤 과정과 절차를 거치든 2차 회담은 과감한 핵 폐기의 출발점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려면 밖에서도 껍질을 깨야 한다.

 

비핵화는 김정은의 노력과 의지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트럼프가 비핵화의 장애물을 제거해줘야 한다. 첫째, 제재 완화가 필요하다. 비핵화의 긴 시간 동안 전면 제재를 유지하며 일방적 폐기를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제재의 틀을 유지하면서 비핵화를 유인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목표는 핵 폐기지 제재가 아니다. 둘째, 종전선언·연락사무소 설치 등 관계 개선에 나서야 한다. 북한 논리에 따르면 그것은 핵무장의 원인인 대북 적대가 사라지고, 따라서 핵의 정당성이 무너지는 걸 의미한다. 그동안 트럼프는 북한에 아무런 보상을 하지 않은 걸 자랑해왔다. 트럼프 비판을 일시 달래주는 데는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그건 트럼프 자신을 감옥에 가두는 일이다. 보상도 없지만, 핵 폐기도 없는 감옥. 역대 미국 대통령 가운데 최초로 비핵화의 돌파구를 연 그가 자기 감옥의 수인(囚人)으로 남아 있을 이유가 없다. 지금 사람들은 가시적 성과를 요구하고 있다. 보상한 적 없다며 알리바이를 내세울 단계가 지났다는 뜻이다. 준 것보다 얻은 것이 더 많은, 좋은 거래였다고 평가받는 쪽으로 생각을 바꿔야 한다. 그렇게 하면, 세상의 시선도 대북 보상 문제가 아닌, 트럼프가 이루어낸 핵 폐기 성과에 쏠린다. 그 기회가 다가오고 있다. 트럼프, 당신은 감옥에서 탈출해야 한다. 하노이에서 멋진 장면을 기대한다.

 

<이대근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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