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그분이 오셨다. 작년 하반기 미 연방정부 ‘셧다운’ 때문에 미뤄졌던 일정이다. 원래는 방한계획이 없었지만 우리 쪽에서 사정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 말은 무언가 내줄 일이 많음을 시사한다.
큰 그림은 자못 복잡하다. 한국 외교는 동아시아의 정치군사적 긴장과 경제적 상호의존 간의 비대칭이라는 조건에서 매우 난해한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할 숙제를 안고 있다. 기본적으로 한국 외교는 미국의 아시아 전략의 종속변수다. 미국의 ‘아시아 리밸런싱’ 전략 개념은 아시아에서 미국이 중국에 밀린다는 인식을 전제로 하고 있다. 즉 미국 외교가 중동, 이란·이라크 문제에 몰입하느라 아시아를 중국에 내줬다는 인식 말이다. 따라서 힘의 균형을 복원해야 하는바, 이는 곧 중국 견제와 같은 말이다. 한국은 아시아라는 ‘거대한 체스판’의 ‘졸’이다. 한·미·일 삼각 군사동맹은 바로 이 지점에 위치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북한·북핵 문제를 놓고 보면, 특히 우리는 중국이라는 레버리지가 미국보다 더 절실하다. 미국이 원하는 한·중·일 삼각동맹을 통한 아시아 힘의 균형의 복원을 위해서는 또한 한·일관계의 정상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이 또한 독도와 과거사 문제로 발목이 잡혀 있다.
경제 쪽으로 눈을 돌려 보자. 복잡하기는 매일반이다.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는 TTIP(범대서양무역투자 동반자협정) 곧 미·EU FTA와 더불어 미국 세계 시장 전략의 큰 축을 이룬다. 이들은 실로 오바마표 통상전략의 핵심이다. TPP와 관련, 애당초 우리는 협상 ‘참여’를 원했다. TPP 12개국과 테이블에 마주 앉아 서로 협상하는 그런 그림 말이다. 하지만 종친 지 오래다. 12개국 협상이 다 끝난 뒤 ‘가입’하라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TPP협상은 12개국 그중 특히 미국 등이 제시한 ‘가입’ 조건을 받을 건지 말 건지를 소위 ‘협상’하는 것을 의미한다.
TPP중단하라 (출처 :경향DB)
TPP는 사실 오바마의 아시아 리밸런싱 전략과 불가분리적인 관계다. 특히 중국이 주도하는 RCEP(ASEAN + 6개국 FTA)를 놓고 볼 때 특히 그러하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또 ‘가랑이를 찢어야’ 한다. 특히 한·중 FTA협상이 한창인 데다, 중국은 우리의 최대 투자국이자 최대 교역국이다. 무역흑자의 대부분을 챙기는 나라다. 박근혜 정부는 자신의 통상전략을 ‘린치핀’으로 표현한 바 있다. 미국 주도 TPP와 중국 주도 RCEP 사이를 잇는 ‘연결핀’이 되겠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것이 일장춘몽이었음이 드러나기에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뭐 ‘당랑거철(螳螂拒轍)’을 연상하면 되겠다.
우리에게 동아시아 정치경제 지형도는 결국 이러하다. 경제 실익은 중국에서 챙기고, 안보 이익은 미국에서 구한다. 하지만 이런 형세는 잘하면 대박이요, 못하면 쪽박이다. 왜냐하면 이 조건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우선 미국에는 경제적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그리고 중국 입장에서 한국의 이런 ‘얄미운’ 처신을 한없이 묵인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오바마의 방한은 이런 구조적 조건에서 보자면 결국 밀린 세금 받으러 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당장 TPP ‘가입’ 문제다. 전대미문의 초대형 ‘밀실협상’인지라 지금까지 TPP에서 뭐가 협상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관측건대 TPP 협정문이 한·미 FTA를 기본모델로 하고 있기 때문에 ‘한·미 FTA 플러스’, ‘마이너스’가 조합될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국영기업 관련 장이 추가되는 것으로 보아 이는 ‘한·미 FTA 플러스’가 되어 우리한테 불리하고, 상품무역 쪽은 ‘한·미 FTA 마이너스’가 되어 우리한테 불리해지는 쪽으로 마무리될 가능성 역시 작지 않다. 특히 TPP로 인한 대일 무역적자 확대도 마이너스 요인이다.
오바마가 들이밀 ‘세금고지서’는 꽤 두툼할 것 같다. 그중 국영기업과 관련된 먹잇감으로는 산업은행, 우정사업본부 등이 유력하다. 이 외에도 TPP ‘입장료’로 저탄소차 협력금제도 폐지, 금융정보 해외위탁, 유전자변형(GMO) 농산물 확대 허용, 쌀·쇠고기 전면 개방 등 한·미 FTA 이행과 관련된 것들도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운, 반갑지 않은 손님이지만, 머무는 동안 대접에 소홀함이 없었으면 좋겠다. 원래 우리 것이긴 하지만, 대한제국의 ‘국새’ 택배비용으로 그 정도면 족하지 않을까 싶다.
이해영 |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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