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일본이 독일처럼 되기 어려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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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시론]일본이 독일처럼 되기 어려운 이유

by 경향글로벌칼럼 2014. 3. 4.

한·일 간 역사문제에 대해 아베 신조 총리를 비롯해 그의 주변 사람의 발언이 거침없다. 일찍이 일본사회 지도층이 역사문제에 대해 이 정도의 수위로 한꺼번에 발언한 적이 없었다. 아베 총리는 아시아·태평양전쟁이 일본의 침략으로 일어난 것인지 검토해야 한다고 서슴없이 발언했다. 그가 선두에서 동아시아 역사문제의 근본을 부정하려 하자, 뒤이어 주변 인사의 발언이 이어졌다. 일본군 ‘위안부’와 같은 사례는 전쟁을 한 어느 나라에도 있었다거나, ‘30만명’이 일본군에 학살당했다는 난징대학살이 없었다고 극단적인 발언까지 내뱉었다. 최소한의 사실관계조차 부정한다는 점에서 이들은 합리적인 보수가 아닌 것 같다. 그들의 발언이 극소수의 주장이고 묵인할 수 없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있다면 이렇게까지 나올 수 있을까. 퇴행적 언행이 유통될 수 있는 무엇인가가 일본사회에 있어왔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지난 1월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안중근 의사가 테러리스트라고 발언했다. 일본인 가운데 그의 발언에 공감하는 사람도 많다. 많은 일본인은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암살을 ‘계기로 1910년 한국병합을 강행했다’고 학교에서 배웠다. 최소한 1994년경까지 고교를 다닌 일본 사람은 안중근 의사의 이토 저격이 한국병합의 원인 가운데 하나였다고 배운 것이다. 책임 떠넘기기도 보통 수준이 아니다. 그런데 분명한 사실은 1894년 3만명이 넘는 동학농민군이 일본군에 학살당할 때 이토는 총리대신이었다. 그는 한반도의 일본군에 대한 명령권을 민간인 통감이 갖도록 하고 의병탄압을 지휘했다.

일본의 유명한 어떤 학자는 일본군 ‘위안부’에 항의하기 위해, 한국의 지도적인 인사가 독도를 방문하는 행위를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말한다. 역사문제와 영토문제를 동일시하고 있다는 비판인 것이다. 일본정부의 공식적인 입장과 하등 다를 바 없는 주장이지만, 한·일관계에 권위 있는 전문가가 한국정부와 한국인의 정서를 대놓고 비판한 것이다. 심지어 독도와 그 주변을 평화의 지대로 만들자고 주장하는 일본인도 있다. 언뜻 들으면 매우 솔깃한 발언이다. 이들 가운데 중국과 갈등하고 있는 센카쿠열도와 러시아가 지배하고 있는 북방 4개 섬을 일본 땅이라고 전제하는 사람도 많다. 두 곳도 일본의 침략전쟁사와 깊은 연관이 있는 역사문제인데 자기중심적으로 ‘평화’를 말하는 것이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 (출처 :AP연합뉴스)


반면에 학문과 실천 방면에서 한·일 양국의 신뢰를 얻고 있는 어떤 학자는,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성 차원에서 일본이 독도를 방기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독도문제를 역사문제라는 맥락에서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사람 가운데는 1965년 한일기본조약으로 한·일 간의 역사문제가 기본적으로 정리됐다고 보는 경우도 많다. 단지 그들은 협정을 체결하기까지 독도에 관한 합의가 없었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었으므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어찌 보면 매우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대안 같지만, 한일기본조약이 일본의 침략과 지배문제를 근본적으로 정리한 협정인지 의문이다.

일본에서 진보적인 인사 대부분은 일본국민의 가해의식이 약화되는 현실을 우려한다. 그런데 침략전쟁의 가해책임을 국민의 책임으로까지 구체화하려면 주저하는 사람도 있다. 히로시마평화기념공원에 한국인의 피폭 사실을 알리는 기념물을 설치할 때 일본사회가 얼마나 주저했는지 알면 쉽게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합리적인 보수와 진보적이라는 일본인조차 자신의 근대사를 정면으로 직시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천황제 때문이다. 일본의 근대사는 침략전쟁사를 빼고 설명할 수 없다. 천황은 ‘신’이었고 최고 책임자였다. 일본에서 근대사를 제대로 가르치면 침략전쟁들의 정점에 있던 천황의 책임을 언급할 수밖에 없다. 지금의 일본이 독일처럼 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신주백 | 연세대 HK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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