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의 만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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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시리아의 만델라’

by 경향글로벌칼럼 2011. 11. 6.
이희수|한양대 교수·중동학

아랍민중들의 민주화 투쟁이 속속 열매를 맺고 있다. 튀니지에서는 독립 후 처음으로 자유 선거에 의해 국민의 대표를 뽑았고, 이집트와 카다피를 축출한 리비아에서도 조만간 새로운 형태의 민주정권이 들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예멘에 이어 서방의 비열한 음모와 방관 속에 무자비한 민간인 학살이 계속되고 있는 시리아가 걱정이다. 그나마 시리아에는 든든한 한 정신적 야권 투쟁가가 있는 게 다행이다.
 
다마스쿠스 시내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를 ‘시리아의 넬슨 만델라’라 부른다. 더러는 ‘어른’이라 부른다. 네 차례에 걸쳐 투옥되어 감옥에서만 20년 이상을 지낸 전설적인 저항 운동가다. 그는 제대로 재판을 받아본 적도 없었다. 언제 풀릴지도 모르는 절망 속에서 오직 부자세습의 폭압정권을 무너뜨리겠다는 집념 하나로 평생을 바친 민주투사다. 첫 번째 투옥은 1952년, 그의 나이 22살 때였다. 법대를 갓 졸업한 청년은 군사쿠데타를 비난하다 체포되어 재판 없이 5개월간 혹독한 고문을 받고 풀려났다. 두번째 체포는 1958년, 시리아와 이집트의 일방적 국가통합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다 재판없이 16개월을 복역했다.

1970년 아사드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자 당연히 그는 저항했다. 이후 두 사람의 악연은 30년간 질기게 지속된다. 그는 온갖 유혹과 가족을 처단하겠다는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온 몸으로 군사독재에 저항했다. 아사드의 분노가 폭발했다. 1980년 세 번째 체포된 그는 무려 18년 동안 감옥에 갇힌다. 그 중 13년간을 창도 빛도 없는 좁은 독방에서 초인적인 저항을 계속했다. 하루 세 번 화장실 입이 허용될 뿐이었다. 물론 기소도 재판도 없었고 그의 형기는 아사드 대통령 이외에는 아무도 몰랐다. 그 기간 동안 그는 숨쉬는 축복을 위해 매일 밥알 한 톨씩을 아껴 그의 감옥 벽면에 거대한 설치미술을 만든 것으로도 유명하다. 재판받고 책을 읽을 수도 있었던 만델라보다도 훨씬 처절한 저항이었다. 그의 이름은 리아드 알 투르키이다. 시리아의 미래를 밝혀줄 정신적 지도자요, 불굴의 사회주의 혁명가다.

아사드가 30년의 잔혹한 독재 끝에 심장마비로 사망하자, 2000년 그의 둘째 아들 바샤르가 권력승계를 했다. 그의 나이 34세, 헌법상 대통령 취임 최소연령은 40세였다. 아사드 사망 발표 후 1시간도 안되어 시리아 의회는 대통령 취임 연령을 40세에서 34세로 낮추는 코미디 같은 헌법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리아드가 가만있을 리 없었다. 2001년 8월 그는 색전증으로 팔이 마비된 상황에서 테러에 의존하는 시리아 정권의 부자세습을 강도 높게 비난하며 민주화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한다. 당시는 서슬퍼런 공포정치가 극에 달한 상황이었다. 다음날 그는 누군가에게 납치되어 종적을 감춘다. 빗발치는 여론에 못이겨 당국은 2002년 6월 그의 체포를 인정하고 국가전복죄로 재판에 회부한다. 그가 평생 처음 받아 본 재판이었다. 그는 다시 감옥으로 보내졌다.

시리아에는 리아드같이 혼신을 다해 저항하는 정치지도자들이 있다. 그들은 시간이 날 때마다 다마스쿠스 상가 중심지에 있는 카페 라우다에 모여 바샤르 정권 이후의 조국의 미래를 논의한다. 주위에는 비밀경찰들이 겹겹이 포위하고 있지만 감옥을 안방처럼 드나들던 백전 노장들에게는 오히려 익숙한 일상이다.

시리아 민주연합은 드디어 2005년 10월 다마스쿠스 선언을 공표했다. “폭압, 독재, 비합법적인 부자승계 정권을 무너뜨리고, 점진적이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상대를 존중하며 상호협의를 통해 새로운 시리아 민주국가를 건설한다”는 내용이다. 명백한 국가전복 문서다. 이 선언이 있은 후 리아드는 오늘의 아랍 민주화를 정확히 예견했었다. “부당한 아랍정권들은 마지막 숨을 쉬고 있습니다. 내외에서 고립되어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을 겁니다. 야권연합이 정권을 바꿀 수 있다는 오만함을 버려야 합니다. 거대한 민중의 함성이 들려올 겁니다. 그 때 우리는 혼란을 줄이고 민중들을 위해 희생할 준비를 지금부터 해야 합니다”

리아드 투르키의 예언은 적중했다. 시리아의 폭압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한 거센 민중의 저항이 진행 중이다. 그들은 외세 개입을 단호히 거부한다. 시리아인에 의한 새로운 민주 시리아를 위하여 고귀한 피를 흘리고 있다. 그래서 바샤르 붕괴 이후 시리아는 다른 아랍 국가들보다는 훨씬 진전된 민주화를 이룰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81세, 백발의 저항 영웅 리아드 투르키는 지금 침묵하고 있다. 온 몸을 던져 모든 걸 희생하고 조용히 빈자리를 내주는 그에게 우리는 한없는 존경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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