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만델라급’이 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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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오관철의 특파원 칼럼

시진핑, ‘만델라급’이 되려면

by 경향글로벌칼럼 2013. 8. 16.

리콴유(李光耀·90) 전 싱가포르 총리가 지난주 출간된 자신의 저서 <리콴유가 바라본 세계>에서 시진핑(習近平·60) 중국 국가주석을 남아프리카공화국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95)과 같은 급의 지도자라고 극찬하자, 중국 인터넷에는 “만델라에 대한 모욕” “리콴유는 중국 공산당 꼭두각시”란 비난의 글이 올라왔다.



AP연합


AP연합



리콴유가 시 주석을 만델라급이라고 평가한 것은 고난 속에서 단련됐다는 두 사람의 공통점을 봤기 때문이다. 만델라는 남아공의 악명 높은 인종차별정책에 저항하면서 27년간 수감됐고, 그 가운데 18년을 흑인전용 교도소가 있는 로벤 아일랜드에서 보냈다. 시 주석은 9살 때 부친이 실각하자 반동 가족으로 몰렸다. 16세에 농촌으로 하방(下放)돼 토굴에서 살면서 배고픔에 떨어야 했다. 7년간에 걸친 시 주석의 하방 생활은 개인적으로 큰 역경이었음에 틀림 없을 것이다. 만델라의 오랜 수감생활을 그의 하방 생활과 단순 비교해 만델라의 고난이 더 크다고 주장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 밖에도 시 주석은 차기 지도자로 사실상 확정된 후 첫 해외순방지로 싱가포르를 택했고, 중국은 싱가포르 모델에 상당한 매력을 느껴 왔다. 리콴유가 시 주석을 높이 살 이유는 많다.


하지만 최근 중국에서 벌어지는 인권탄압 사례들을 보면 리콴유의 주장에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중국에서는 최근 몇달 동안 재산공개를 요구한 최소 16명의 활동가가 구금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설교도소인 흑감옥의 실체를 처음 폭로한 인권 변호사 쉬즈융(許志永)은 지난달 16일 군중을 모아 공공장소에서 질서를 어지럽힌 혐의로 체포됐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류샤오보(劉曉波)는 랴오닝성 감옥에 여전히 갇혀 있고, 가택연금을 당해 온 부인 류샤(劉霞)의 고난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남동생이 지난 6월 부동산 사기죄로 징역 11년형을 선고받은 뒤 류샤는 “어떻게 (나라가) 우리를 이렇게 미워할 수 있는가”라며 눈물을 흘렸다.


중국 인권 운동가 쉬즈융


중국 인권운동가 텅뱌오는 올해에만 최소 100명의 인권운동가들이 체포됐으며, 비교적 온건한 성향의 인권 운동가들이 체포되고 있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자오쯔양(趙紫陽) 전 중국 공산당 총서기의 핵심 참모였던 바오퉁은 “그(시진핑)에게서는 억압하는 것만 볼 수 있다.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는 것만 원하고 있을 뿐”이라고 혹평할 정도다. 바오퉁의 인식은 자유주의적 개혁세력이 그에게 실망하고 등을 돌리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중국에서 자유와 민주, 인권보장, 일당 지배체제 개혁을 주장하는 세력은 중국의 발전을 위해 중요한 화두를 던지고 있지만 고위층이나 당 기관지들은 서구식 민주주의의 앞잡이라며 비난하기에만 급급해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정치개혁에 대한 욕구는 억눌린 채 계속 축적되고 있다. 베이징 외교소식통은 “지식인들 사이에 민주주의, 헌정을 거침없이 주장하고 공개적으로 논의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으며, 예전과 확연히 다른 느낌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시 주석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세계 각국이 똑같은 인권모델을 채택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인권의 기본정신에 위배된다는 류의 주장이 중국 관리들에 의해 앵무새처럼 반복될 뿐이다.


1994년 흑인이 처음으로 참여한 투표에서 남아공 첫 흑인 대통령이 된 만델라는 진실과화해위원회를 구성해 자신을 억압했던 백인 세력에게 용서와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다. 시 주석은 지난 3월 남아공 방문 때 내년을 중국에서 남아공의 해로 삼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가 만델라에게서 교훈을 얻어 진짜 만델라급이 되려면 우선 체제와 다른 주장을 한다는 이유로 억압받는 이들의 눈물부터 닦아줘야 할 것 같다.



오관철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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