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메니아 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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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아르메니아 학살

by 경향글로벌칼럼 2012. 2. 5.


1980년대까지만 해도 유럽 주요도시에 부임하는 터키 외교관들은 축하 대신 위로전화를 받았다. 당시 그들에게 유럽은 지옥의 근무지나 다름없었다. 아르메니아 해방을 위한 극우단체(ASALA)의 표적 테러로 희생된 터키 외교관만 46명에 달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지난 1월23일, 프랑스 상원이 터키의 아르메니아인 학살을 부정하는 행위를 형사처벌하는 법안을 통과시키자 아르메니아는 오랜 투쟁의 승리를 자축했다. 반면 터키와 프랑스 관계는 역사상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다. 이 법이 발효되면 아르메니아 학살을 공개적으로 부인하는 발언이나 표현에 대해 징역 1년과 벌금 약 6700만원을 물게 된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정신 위반 논란과 함께 국가 배상문제가 따를 수 있기 때문에 터키로서는 견디기 어려운 외교적 수치와 국민적 모욕을 당한 셈이다. 터키 전역을 뒤덮고 있는 반 프랑스 시위가 이를 잘 말해준다. 무엇보다 같은 시기 튀니지, 모로코, 알제리 등을 식민통치하면서 수백년간 잔혹한 아랍인 박해와 학살을 저질렀던 프랑스가 역사적 죄의식은 고사하고 남의 나라 역사를 단죄하는 방식에 터키는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터키 국민들이 14일 아르메니아와의 월드컵 예선 경기가 열린 부르사의 아타투르크 경기장에서 대형 아르메니아 국기와 소형 터키 국기를 흔들며 환호하고 있다 ㅣ 출처 : 경향DB



오스만 튀르크는 1차 세계대전 중에 독일과 함께 동맹국에 참여하여 패전함으로써 붕괴됐다. 중립을 지키려던 터키는 러시아가 연합국의 일원으로 터키 동부 지역을 침략해 오자 결국 독일편에 서게 됐다. 이때 오스만 제국의 통치를 받던 러시아 접경의 아르메니아 혁명세력들이 전쟁의 와중에서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러시아 편에 서서 터키를 공격했다. 이에 터키는 아르메니아 혁명위원회를 폐쇄하고 235명의 지도자를 반역죄로 구속해 버렸다. 동시에 내부의 적을 격리시키기 위해 시리아, 팔레스타인, 이라크 등지로 대규모 강제이주를 단행했다.

이 과정에서 양측의 군사적 충돌은 물론 강제이주에 따른 추위와 굶주림, 질병 등으로 인해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아르메니아 측은 150만명 사망설을, 그것도 터키 당국의 명령에 의한 조직적인 대량 인종학살을 주장하고 있다. 이에 반해 터키정부는 그것은 전쟁의 과정에서 생겨나는 인명 피해일 뿐이며,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아르메니아 무장세력에 의한 터키군인과 민간인 희생도 40만명을 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르메니아인 희생자 숫자만 해도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천차만별로 최소 20만명에서 최고 200만명까지 10배 이상 차이가 난다. 당시 터키 동부의 아르메니아 인구 규모가 150만명이었던 점을 고려한다면 희생자 수는 60만~80만명 정도로 보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 분석이다.

문제는 2차 세계대전 중에 일어난 유대인 대량학살 사건인 홀로코스트에 비견될 정도로 엄청난 비극이었음에도 그동안 정확한 역사적 실체를 밝히는 작업보다는 정치적 목적으로 이 사건이 다루어져 왔다는 점이다. 오스만 제국의 오랜 지배를 경험했던 유럽은 선거나 주요한 정치적 이슈가 있을 때마다 아르메니아 문제를 들고 나와 국제무대에서 터키정부를 괴롭혔고, 터키 극우정당들은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아르메니아 학살 자체를 부정하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특히 프랑스가 이 문제에 민감한 것은 우선 자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50만명에 달하는 아르메니아인 유권자들의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둘째는 터키의 유럽연합 가입에 가장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프랑스가 국제적으로 민감한 아르메니아 문제를 통해 터키를 견제하려는 정치적 속셈이 깔려있다.

홀로코스트나 아르메니아 학살사건 모두는 양차 세계대전 중에 일어난 불행한 인류역사의 오점이다. 그러나 정치적 목적으로 인류의 비극이 제멋대로 해석되고 이용당하기보다는 터키와 아르메니아 양국학자를 포함한 국제적 연구와 자료의 엄정한 분석으로 역사적 원인과 실체가 제대로 밝혀지는 것이 우선적 과제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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