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하프타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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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누구의 하프타임인가

by 경향글로벌칼럼 2012. 2. 12.
김준형 | 한동대 교수·국제정치 

미국 최고의 스포츠 이벤트인 슈퍼볼 경기가 지난주에 있었다. 야구, 농구, 아이스하키도 많은 인기를 누리지만, 미식축구는 지역이나 인종을 가리지 않고 전 미국인의 사랑을 골고루 받고 있는 스포츠다. 또한 7전4선승제로 챔피언을 가리는 다른 종목들과는 달리 단판승부인지라 그 열기는 거의 광적이다. 경기 외적으로는 전 세계 1억1130만 시청자를 향한 30초당 40억원짜리 광고전쟁도 치열했다.

그런데 이번 광고들 중에 하나가 미 대선과 맞물리면서 정치적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자동차회사 크라이슬러의 광고인데, 제품선전이 아니라 공익광고처럼 만들어졌다. 경제위기로 고통당하는 가정과 공장들의 풍경을 그리면서도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할리우드의 아이콘인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내레이션을 통해 미국은 결코 한 방에 무너질 나라가 아니며, 미국 자동차 산업의 메카인 디트로이트의 부활이 곧 미국 전체의 부활로 이어질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던졌다. 슈퍼볼의 전반전이 끝난 하프타임에 광고를 내보내면서 지금이 바로 미국의 하프타임이며, 후반전의 승리를 위해 모두가 힘을 내자고 말한다. 

 

슈퍼볼에서 선보여 오바마 대통령 찬양 논란에 휘말린 크라이슬러 광고 l 출처: 경향DB



미국인의 애국심을 한껏 자극하며 감동을 준 매우 잘 만들어진 광고라는 것이 현지의 평가다. 그러나 공화당과 티파티 측에서는 왜곡된 메시지를 통해 버락 오바마의 재선을 돕는 정치적 광고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이스트우드와 크라이슬러가 서둘러 부인했지만, 공화당은 불만을 감추지 않는다. 전반전의 어려움을 딛고 이제 서서히 회복하고 있으니, 분열적 정치를 내려놓고 후반전에는 도약을 위해 같이 노력해야 한다는 부분은 마치 공화당의 정치공세를 비판하고 오바마의 재임을 지지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또한 구제금융을 통해 기사회생한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산업을 오바마는 자신의 주요 업적으로 내세우는 반면, 공화당은 세금을 낭비한 비효율의 상징이라고 비판해왔다. 

11월 대선을 향한 공화당의 무기는 경제재건이다. 특히 월가 CEO 출신의 유력주자 미트 롬니에게 이는 소위 필살기라 할 수 있는데, 벌써부터 약발이 떨어지고 있다. 우선 미국의 실업률은 꾸준히 낮아지고 있으며, 아직은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지만 광고에서처럼 전체 경기 역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게다가 조직과 자금, 그리고 오바마의 대항마로서의 대세론에도 불구하고 롬니의 중도성향은 자신의 주 지지층인 보수세력의 마음도 좀처럼 얻지 못하고 있다. 최근의 미주리, 미네소타, 콜로라도에서의 경선 패배는 이를 확인했다.

그러나 이런 이유들보다 더 결정적인 결핍은 긍정적 비전의 메시지다. 어느 나라나 비슷하겠지만 미국인들은 특히 희망적 메시지에 열광하는데, 공화당의 경선은 네거티브가 난무한다. 경선주자들은 상호비방으로 피투성이가 되고 있음은 물론이고, 오바마의 모든 것을 부정한다. 그러는 가운데 국민정서와도 점점 분리되고 있다. 하프타임에서 코치들이 해서는 안될 첫 번째 금기사항이 바로 자기 팀을 향한 비난이라고 한다. 특히 경기에 지고 있을 때는 더욱 삼가야 하는데, 공화당이 바로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번 슈퍼볼 전반전이 끝났을 때 뉴욕 자이언츠는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에 뒤지고 있었지만 후반전에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었다. 그런데 지금 같아서는 공화당의 하프타임은 아닌 것 같고, 때이른 예상이지만 후반전의 역전승도 그들의 것이 될 수 없을 듯하다. 왜냐하면 일단 전반전 패배의 아픔을 겪은 후 부활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국민정서를 보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렇게 현실감각만 없는 것이 아니라, 오바마 정부의 개입과 규제방식을 비난하며 월가와 시장논리만이 미국의 살길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보면 기억력마저 부족한 것 같다. 전반전의 패배를 초래한 가장 큰 원인이 바로 그것이었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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