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워싱턴포스트 매각과 베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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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여적]워싱턴포스트 매각과 베조스

by 경향글로벌칼럼 2013. 8. 8.

1945년 여름 허스트신문의 27살 젊은 기자는 독일 항복 이후 유럽을 취재하라는 데스크의 지시를 받았다. 그의 취재 노트. “파괴는 철저했다. 뒷골목에는 시체에서 나는 역겨운 악취가 심하게 진동하고 있다. … 여자들은 먹을 것만 얻을 수 있으면 무엇이든 하려 든다.” 포츠담에서는 해리 트루먼 대통령과 유럽 주둔 미군사령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의 조찬 회동을 현장에서 취재했다. 그는 존 F 케네디 대통령이다. 순차적으로 미국 대통령이 된 사람이 한 장소에서 만나는 극적 장면이다. 신문기자는 세상의 맨 얼굴을 찾아가는 최초의 목격자이자 권위있는 해석가이다. 그 매력 때문에 마르크스, 처칠, 헤밍웨이도 기자를 했다. 


신문과 기자의 힘을 잘 보여주는 사례는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이다. 1971년 뉴욕타임스의 펜타곤 페이퍼 보도 이후 닉슨의 압박으로 신문사가 생사기로에 직면했을 때 워싱턴포스트의 소유주인 캐서린 그레이엄은 딱 한마디를 했다. “계속 하세요(go ahead).” 1년 뒤 다시 닉슨과 대결했다. 워터게이트 사건 특종을 한 것이다. 닉슨의 보복이 예상됐다. 이 사건을 다룬 영화 <대통령의 사람들>에서는 편집국장이 두 기자와 함께 그레이엄의 최종 판단을 구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역시 같은 말 한마디. 그리고 곧 윤전기가 그 사건을 머리기사로 한 신문을 토해낸다. 이후 워싱턴포스트는 언론의 전설로 남았다. 


그런 신문이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아마존닷컴 창업자인 제프 베조스에게 넘어가게 되었다. 전쟁과 혁명, 세상사를 기록하며 세계를 만들어온 신문의 시대가 막을 내리는 것 같다. 이 신문 인터넷판에는 마이애미헤럴드 일요판 전 편집장이 제프 베조스에게 쓴 편지가 실렸다. 


미국 수도 워싱턴에 있는 워싱턴포스트 본사 정문 전광판에 5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가) 제프 베조스에게 팔렸다”는 뉴스 문구가 흐르고 있다. 워싱턴 _ AFP연합뉴스


‘1982년 신문의 사주가 내게 실버 나이트상 수상자들을 1면 톱에 실으라고 요구했지만 나는 듣지 않았다. 뛰어난 고교 3년생에게 주는 실버 나이트상은 사주가 설립했다. 나는 아첨하는 기사는 일요판과 맞지 않는다며 눈에 덜 띄는 면에 배치했다. 사주는 말 안 듣는다고 노려보기는 했지만 내게 거절할 수 있도록 허용할 만큼 현명했다. 그런 편집국의 분위기로 인해 10년 지나 우리는 여러 개의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1면에 실으라던 그 학생은 팔레토고교를 1등 졸업한 베조스, 당신이었다.’



이대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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