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는 민주주의가 없다고 한다. 그리고 다당제와 삼권분립이 없는 중국의 민주화는 허구라고도 한다. 미국도 항상 중국의 인권과 민주주의 문제를 제기해왔고 이를 중국위협론의 근거로 삼아왔다. 실제로 중국의 공산당 일당체제를 버리거나 서구의 경쟁적 정당체제나 삼권분립 제도를 도입할 가능성은 없다.
그러나 새로운 지도부는 민의를 듣기 위해 현장으로 달려가고 있다. 민의는 물과 같아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배를 엎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민의를 경외하자(敬畏民意)>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위기의식을 느낀 중국 정부도 ‘공산당 지배만 빼고 다 바꾸라’는 취지로 과감한 정치개혁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사회주의 틀 내에서 할 수 있는 참여, 경쟁, 자유, 평등, 복지, 책임성, 소통, 견제와 균형 등 민주주의의 핵심요소들을 적극 정치과정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불평등과 사회적 불만이 분출하고 있고 귀족화된 권력집단, 국유독점자본과 금융자본이 하나의 카르텔을 형성한 엘리트 정치가 국민으로부터 외면받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중국 지도부는 구체적으로 공금으로 먹고 마시는 일을 척결하는 일부터 시작해 건국 이후 처음으로 지도부의 재산 공개까지 했다. 시진핑 주석도 푸저우, 항저우, 베이징에 있는 가옥 3채와 예금 230만위안(약 4억원)을 신고했다. 그 진위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방법이 없지만, 중국 정치의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정치적 신호탄임은 분명하다. 지난주 네이멍구 대학에서 ‘한·중 민주건설과 행정개혁’을 주제로 열린 국제학술회의에서도 중국식 민주주의에 대한 토론이 뜨거웠다. 특히 놀라운 것은 중국이 직면한 정치의 위기, 민주주의 부족에 대한 중국 정치학자들의 솔직한 자기진단이었다. 이들은 과거 중국의 정치체제가 완벽(全能)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반드시 그 ‘성역’을 깨야 하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정치인들이 무지한 백성을 이용해 통치하는 것을 막아야 하며,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주체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중국식 해법은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사회주의가 공고화될 때 인민의 권리가 보장된다’는 데서 출발한다. 이것은 서방 민주주의가 중국 사회주의를 해체할 것이라는 위기감 때문만은 아니며, 체제에 대한 자신감이 증가하면서 서구 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이 강조됐다. 특히 금융위기 이후 미국 자본주의의 속살과 참회가 없는 일본 정치를 목격하면서 이러한 인식은 더욱 강화됐다. 중국은 지금 서구 민주주의가 경제발전, 취업, 사회질서와 안정 유지, 종합국력의 신장에서 다른 정치제도보다 뛰어나다는 근거가 있는가, 지금 민주제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행복을 느끼고 있는가를 묻고 있는 중이다. 베이징에서 만난 원로 정치학자가 한국은 빛나는 민주주의의 성취에도 불구하고 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국 중 행복지수가 27위로 하위권에 머물러 있는지에 대해 묻기도 했다.
물론 중국식 정치개혁이 정치 주체의 룰을 바꾸고 엘리트 정치의 폐해를 극복하는 것이라면 ‘선거의 확대’를 빼고 논하기는 어렵다. 이런 점에서 중국의 민주주의는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 7월로 92주년을 맞이한 중국공산당의 역동성의 근원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한 정당이 근 100년 동안 존속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활성화된 당내 민주주의, 안정적인 엘리트 충원, 유연한 이데올로기, 권력계승의 안정성, 예측가능한 정치, 핵심 엘리트의 정치력, 체제에 대한 충성도 등이 그것이다. 여기서 한국 민주주의는 공고화됐는지, 한국 정치 엘리트들이 중국보다 우수하다는 명확한 증거가 있는지, 당내 민주주의가 중국보다 활성화됐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지, 그리고 우리 국민들은 정말 민주주의를 만끽하고 행복을 느끼고 있는지를 묻게 된다. ‘좋은’ 민주주의(good democracy)에 대한 고민이 절실한 때다.
이희옥 | 성균관대 교수·성균중국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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