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는 흔히 명문화된 규칙 위에 ‘잠규칙(潛規則)’이 있다고 한다. 겉으로 드러난 명확한 규칙은 아니나 구성원들 사이에 광범하게 인정받고 있어 반드시 지켜야 할 숨겨진 규칙이다. 잠규칙은 중국 사회를 이해하는 주요 키워드이기도 하다. 중국 공산당의 잠규칙 중 하나가 ‘칠상팔하(七上八下)’다. 5년 주기로 열리는 공산당 대회에서 만 67세는 상무위원에 올라갈 수 있지만 68세 이상은 내려와야 한다는 것이다. 칠상팔하는 2002년 제16차 당 대회를 앞두고 장쩌민(江澤民) 주석이 정적인 리루이환(李瑞環) 상무위원의 연임을 막으려 도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덩샤오핑(鄧小平)이 마오쩌둥(毛澤東)식 장기집권의 폐해를 없애려 도입을 지시했다는 설도 있다.
칠상팔하에 따르면 내년 가을 19차 공산당 대회에서 시진핑(習近平) 주석과 리커창(李克强) 총리를 제외한 5명의 상무위원은 전원 교체 대상이다. 1948년생으로 내년 만 69세가 되는 왕치산(王岐山) 상무위원도 퇴진해야 한다. 당 중앙기율위 서기를 맡고 있는 왕치산은 반부패 운동을 지휘해 온 시 주석의 최측근이다. 시 주석이 그를 5년 더 상무위원에 앉히려 한다는 보도가 줄을 잇고 있다. 24일 개막한 공산당 16기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에서도 칠상팔하 변화가 주목된다는 소식이다. 칠상팔하가 무너지면 2022년 10년 임기를 마치는 시 주석에게도 장기집권의 길이 열린다는 점에서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칠상팔하는 순조로운 권력 이양과 정치 안정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본래 숨겨진 규칙은 불투명하며 집단 간 이해관계의 산물이다. 정당한 법률과 법규가 아닌 숨겨진 규칙의 폐해는 드러나기 마련이다. 칠상팔하의 붕괴는 중국 정치의 투명성 제고에 긍정적일 수 있다. 그러나 민주국가의 개헌과 다를 바 없는 권력구조 개편 논의에 중국 시민들이 철저히 소외돼 있다는 점에서 후한 점수를 주긴 어렵다. 시 주석의 장기집권 의사가 개입돼 있을 가능성이 커 더욱 그렇다. 동북아에서 중국의 시진핑, 일본의 아베, 러시아의 푸틴이 모두 장기집권을 꿈꾸는 분위기다. 묘하게도 이런 시점에 박근혜 대통령이 임기 내 개헌 추진 의사를 밝혔다.
오관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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