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차례의 미국 대선후보 토론이 끝나고 이제 11월8일 선거만 남았다. 나는 여태 이 칼럼에서 힐러리 클린턴만 시쳇말로 까댔다. 그래서 혹자는 내가 트럼프를 옹호하는 사람쯤으로 이해했을 수도 있는데 그것은 명백한 오해다. 내가 트럼프를 안 건드린 것은 아예 ‘감’이 안되니 논외로 치고 싶어서였다. 원래 금수저 태생인 그에게서 뭘 더 바랄 수 있을까. 그러나 내가 트럼프를 논외로 친다고 해서 미국에서 엄연히 일고 있는 트럼프 현상을 무시한다면 그것은 미국인들, 특히 중산층 이하 서민들을 무시하는 처사이므로 조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트럼프 현상은 그들의 분노한 민의의 반영이기에 그렇다.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자리를 놓고 힐러리 클린턴과 겨뤘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민주당 전당대회 첫날인 7월 25일(현지시간) 대회장인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웰스파고센터에서 클린턴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필라델피아 _ AFP연합뉴스
미국의 민주당과 공화당을 우리식의 진보와 보수의 틀로 꿰맞추려 들지 말아야 한다. 그런 구도는 이미 월가를 필두로 한 금권세력에 의해 무력화된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금권정치 아래에서 정당의 구분은 아무 의미 없게 되었고 그러기에 기존 정치인들에게 좌절한 국민들은 아웃사이더에게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다. 아웃사이더인 트럼프가 자신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금권세력은 이를 달가워하지 않고 그들의 하수인인 미디어, 정치인, 학계는 균형감각도 상실한 채 트럼프를 맹공하고 있다. 이러니 트럼프가 ‘선거조작 가능성’을 들고나온 것이다. 미디어의 편향적인 보도와 선별적 여론조사 결과 발표, 민주당의 뉴욕시 후보 경선 투표장에서 있었던 선거 부정(투표 시 사진이 부착된 신분증 확인 제도가 없는 17개 주 중 하나인 뉴욕주 법을 악용해 동일인이 여러 투표장을 돌아가며 투표) 폭로, 과거 시카고시 선거에서 720명의 사망자가 선거한 것으로 드러난 것 등을 예로 들어서 하는 주장이다.
투표소 선거 부정행위는 일단 접어두고 미디어의 편향적 보도만 놓고 봐도 트럼프의 주장이 터무니없어 보이지 않는다. 지난주 공화당의 몇 안 남은 트럼프 지지자인 깅그리치는 ABC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의 미확인 성추문 보도에 미디어가 23분을 할애하는 동안 클린턴의 월가에서의 고액 강연 내용 유출과 클린턴재단의 비리 등은 1분도 채 보도되지 않았다”며 클린턴에게 일방적인 편향성을 보이는 미디어가 공정선거의 최고의 적이라고 비난했다.
요약하면 클린턴과 트럼프는 한껏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불공정한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가 지금 겪고 있는 일을 이미 지난 민주당 경선에서 샌더스가 고스란히 당했다. 그렇게 해서 금권세력에 의해 샌더스가 나가떨어졌다. 그 때문에 나는 클린턴과 그녀를 지원하는 금권세력의 사악함에 몸서리가 쳐진다. 나라면 둘 중에서 사악한 클린턴보다 차라리 아웃사이더 트럼프를 고르겠다.
클린턴의 사악한 민낯은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다. 친서민·친중산층을 입에 달고 있지만 실제로는 가진 자들 편에 서고, 그래서 그들의 밥상에서 떨어진 떡고물로 축재한 클린턴이 무너져 내린 미국의 중산층을 위해 도대체 뭘 하겠다고 그 요망한 입을 놀리고 있단 말인가? 최근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월가(골드만삭스)에서 고액(3번에 8억원)을 받고 행한 강연 녹취록을 보라. 월가의 규제는 월가가 알아서 할 일이고, 월가에 대한 자신의 엄포는 단지 시늉이며, 월가 사람이 공직에 진출하는 이른바 회전문 인사가 좋은 것이라고 떠벌리는 것을. 기업을 규제하고 자유무역에 손을 댐으로써 중산층을 살리겠다는 공약을 내세운 클린턴이 한 입으로 다른 말을 하고 있으나 이에 대해 미디어는 일언반구의 보도도 비판도 없다. 왜일까? 클린턴과 월가 그리고 미디어가 죄다 한통속이기 때문이다(이는 클린턴을 지지한 워싱턴포스트도 시인한 바 있다). 민주주의의 근간을 해치고 있는 것은 바로 클린턴이다.
나는 샌더스가 그립다. 월가와 한통속이 아니었기에 담대히 월가에 된서리를 내리겠노라 천명했던, 그래서 무너진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겠다던 노정객의 품격과 올곧은 철학이 가면 갈수록 그립다.
김광기 | 경북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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