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외교가에서는 ‘한·미의 대북정책 엇박자’라는 말이 유행이다. 남북이 대화에 나서려고 하는 시점에 미국이 대북 강경책을 펴면서 이를 가로막으려 한다는 우려가 담긴 말이다. 일부 언론이 ‘엇박자’ 관측을 처음 제기한 뒤 점차 일반화되기 시작해 이제는 미국이 한국에 남북관계 속도 조절을 주문하고 있다는 인식이 국내에서 정설처럼 자리 잡았다.
남북관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인식이 국내에 확고하게 자리를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정말로 한·미가 대북정책에서 엇박자를 내고 있는지를 먼저 살펴보는 것이 순서다. 또 실제로 한·미의 대북인식이 다르다면, 그게 지금 그토록 우려해야 할 일인지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한·미의 대북정책 엇박자 우려는 연초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북한의 소니 해킹에 대한 대응으로 대북제재 행정명령을 내린 데서 비롯됐다. 때마침 북한이 신년사에서 남북정상회담 가능성을 언급하고 정부 역시 남북관계 개선 필요성을 강조하던 시점이어서 미국의 조치는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어 미 행정부 당국자들이 의회 청문회에서 북한에 단호히 대응하겠다는 발언을 하고 오바마가 ‘북한 붕괴’를 거론한 이후 이 같은 관측은 기정사실화됐다.
하지만 미국은 으름장만 놓았을 뿐 행동으로 옮긴 것이 없다. 사실 오바마의 행정명령이나 국무부·재무부 관리들의 의회 강경발언은 북한에 대한 각종 초강력 제재 법안을 준비 중인 의회를 설득하려는 성격이 강하다. ‘우리도 북한에 대해 충분히 강경한 입장을 갖고 있으니 초강경 제재 법안을 만들어 행정부의 손발을 묶지 말고 북한문제 처리를 행정부에 맡겨달라’는 주문이다. 지난주 서울을 방문한 로즈 고테묄러 국무부 차관이 오바마의 행정명령에 대해 “향후 북한 이슈를 다루는 데 있어서 행정부에 정책적 신축성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남북도 아직 말만 무성할 뿐 실제로 일을 벌인 게 없다. 미국이 발목을 잡을 만한 일은커녕 대화에 시동조차 걸지 못하고 있는데 한·미가 정책적으로 엇박자를 내고 있다고 우려하는 것은 현실과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오히려 한·미의 대북인식은 유사한 면이 더 많다. 북한 정권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공통으로 갖고 있고 머지않아 북한이 붕괴할 것이라는 확신도 공유하고 있다. 북한과의 대화 필요성은 느끼면서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여러가지 조건을 주렁주렁 붙여놓은 것도 비슷하다.
한·미가 대북정책에서 불협화음을 낼 정도가 되려면 갈 길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 남북대화가 시작되고 인도적 교류가 재개되는 시점을 지나 본격적인 사업이 구체화되는 단계에 이르렀음에도 핵문제에 대한 북한의 태도가 전혀 변한 것이 없다면, 미국은 그때 비로소 문제 제기를 할 것이다. 지금 단계에서 미국의 태도가 문제될 일은 없다. 그것보다는 미국이 제동을 걸어야 할 수준까지 남북관계를 진전시킬 의지와 역량을 정부가 과연 갖고 있는지가 더 궁금하다.
한국 내에는 한·미가 모든 사안에 대해 완벽하게 같은 견해를 갖고 있어야 안심하는 일종의 ‘한·미 관계 결벽증’이 존재한다. 북한과 미국이 서로 눈길만 한번 주고받아도 대뜸 ‘통미봉남’이라는 아우성이 터져나오는 것이 국내 현실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남북이 아직 마주앉을 준비도 안돼 있는데 벌써부터 미국이 발목을 잡을 것을 우려한다. 이쯤 되면 걱정도 팔자라고 할 수밖에 없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한 유튜브 스타와의 촬영에서 북한 체재의 붕괴에 대해 발언하였다. _ AP연합
한·미가 일심동체가 될 수는 없다. 지금은 아니어도 한·미가 북한 문제에 견해 차이를 노출시킬 날은 반드시 온다. 하지만 그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국내정치적 환경과 지역적 이해관계가 다른 국가 사이에 아무런 이견이 없다면 오히려 그게 비정상이다. 그런 이견을 조정하고 극복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외교다.
좋은 동맹은 항상 똑같은 생각을 하는 관계를 의미하지 않는다. 문제가 생겼을 때 서로 만족할 수 있는 해결책을 신속하게 찾아내는 관계가 좋은 동맹이다. 정부 당국자들도 “한·미 관계에는 빛 한줄기 샐 틈도 없다”는 ‘영혼 없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닐 게 아니라 “양국은 어떤 견해 차이도 극복할 수 있는 신뢰를 갖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국민들의 ‘한·미 관계 결벽증’을 막는 길이라는 점을 알았으면 좋겠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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