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수 | 한양대 교수·중동학
시리아 내전이 민간인 희생만 키우면서 장기전으로 돌입하고 있다. 정부군의 총격으로 사망한 민간인 숫자만 7500명을 넘었다. 민주화 시위로 시작된 정권퇴진 운동이 반군의 무장과 함께 내전으로 변질됐고, 국제사회의 개입으로 대리전의 양상을 띠고 있다. 유혈충돌의 와중에서도 시리아 대통령 아사드는 지난 2월26일 다당제 허용과 자유선거를 보장하는 헌법개정을 투표에 부쳐 57.4% 투표에 89.4%의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민중 폭압을 덮어버리기 위한 술책이 분명하지만, 시리아 사태가 독재정권을 몰락시켰던 튀니지, 이집트, 예멘 등의 민주항쟁과는 달리 내전 성격이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무엇보다 국제사회의 이해관계가 서로 얽혀 통일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미국, 유럽, 터키, 아랍연맹 등이 아사드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반면 러시아, 중국, 이란, 레바논의 헤즈볼라, 이라크 등은 아사드 정권에 동조하거나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러시아는 무기공급국으로서, 중국은 석유와 가스 같은 자원 협력과 시장가치 때문에 시리아를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이란은 시리아-헤즈볼라-하마스로 이어지는 반 이스라엘 벨트의 중추적 성격 때문에 가장 적극적으로 시리아 정권을 지원하고 있다. 더욱이 미국의 극심한 경제제재와 핵 포기 압박으로 사면초가인 이란이 이웃의 동맹 시리아까지 잃게 된다면 자국 안보전략과 중동 패권 구도에 결정적 허점을 안게 되기 때문이다. 터키는 물 문제와 쿠르드 반군 문제로 오랫동안 시리아와 반목해 왔다. 유프라테스 강 수원을 장악하고 있는 터키가 대형 댐 조성을 통해 시리아로 흘러들어가는 방류량을 조절하고 있고, 이에 맞서 시리아는 터키의 아킬레스건이라 할 수 있는 쿠르드 반군들을 지원하거나 훈련캠프를 제공해 왔다.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하는 아랍 걸프국가들은 시리아가 소수 시아파 정권으로 친이란 노선을 걸어왔던 점 때문에 불편한 관계였고, 시아파 정권을 무너뜨리고 다수파 수니 정권으로 환원한다는 의미에서 아사드 정권 붕괴를 내심 부추기고 있다. 그러면서도 시리아와 연계된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봉쇄나 전쟁의 가능성 때문에 개별 국가단위의 압박보다는 아랍연맹이라는 다자간 채널을 활용하고 있다.
이처럼 상충되는 이해관계 때문에 시리아는 이미 민주항쟁을 통한 독재정권타도 시기를 놓치고 무고한 민간인 인명피해만 늘어나고 있다. 270여개에 달하는 야권 그룹의 분열과 서방과 아랍의 지원을 받는 반군 무장 그룹들의 게릴라식 분산투쟁도 아사드의 정치 생명을 연장해 주는 호기가 되고 있다. 더욱이 아사드 정권 붕괴이후가 더 걱정이다. 대안적 민주정치세력은 오리무중이고 오히려 극단적 이슬람 세력들이 등장해 대혼란이 야기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이는 이라크의 악몽을 떠올리게 한다. 이라크를 침공한 미국은 사담 후세인 정권을 타도하기 위해 손쉬운 정국안정책으로 수니-시아라는 종파 간 갈등유발과 부족-지역별 분할통치를 실시했고, 그 결과 수천년간 결혼과 교역을 통해 함께 잘 살아 가던 이웃부족과 종파 사이에 치유하기 힘들 정도의 적의감과 복수의 응어리만 남겨 놓았다. 현재 이라크 최대의
이러한 우려는 지난 2월24일 튀니지에서 열린 ‘시리아의 친구’그룹 회의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이견을 좁히지 못한 국제연대는 시리아 반군들에게 무장지원을 더욱 강화한다는 결의 이외에는 아사드 정권을 압박할 수 있는 효과적인 대안을 찾지 못함으로써 시리아 사태를 레바논에 버금가는 내전상태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현재는 정부군 이탈의 가속화와 반군들의 군사력 증강으로 힘의 균형이 반군 측으로 돌아서는 시점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는 민간인 피해가 너무 크다. 중국이 적극적으로 정부-반군 사이의 평화협상을 중재하고 있지만, 석유자원의 매력이 없는 시리아에 대한 서방의 관심조차 시큰둥하여 이래저래 무고한 시민들의 희생만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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