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국제정치 한복판에 선 한·중 F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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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정동칼럼]국제정치 한복판에 선 한·중 FTA

by 경향글로벌칼럼 2012. 5. 3.

손열 | 연세대 교수·국제정치학


 

박태호 통상교섭본부장이 천더밍 중국 상무부장과 베이징에서 만나 자유무역협정(FTA) 교섭 개시를 선언하였다. 상대는 최대 무역상대국이며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이다. 6년 전 김현종 당시 본부장이 포트만 미국 통상대표부 대표와 워싱턴에서 교섭 선언을 하면서 한·미상호방위조약 조인 이후 최대의 사건으로 거창하게 포장한 장면에 비하면 사뭇 차분하고 실무적인 자세이다. 선언문과 보도자료에서 쉽게 읽히듯이 조심스럽게 준비된 협상으로 보인다. 대형 FTA는 커다란 사회적, 경제적 조정비용을 치러야 한다는 점에서 한·중 FTA 협상은 한·미 FTA 못지않게 가파른 언덕이다. 협상의 험난함은 밖에서도 찾을 수 있다. 한·미 FTA 협상과 달리 한·중 FTA는 숨가쁘게 전개되고 있는 FTA 국제정치의 한복판에 놓여 있다. 당장 한·중 FTA 교섭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국가는 일본이다. 2004년 중단된 한·일 FTA 협상의 재개를 요구해 온 일본은 최근 한·중·일 FTA를 적극적으로 띄우고 있고, 한국이 미온적이라면서 일·중 FTA를 흘리며 압력을 가하고 있다. 중국도 일본의 한·중·일 FTA 제안에 화답하고 있다. 양국은 광역 동아시아 FTA 제안에도 긍정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한중FTA 협상이 개시된 2일 농수축산연합회 회원들이 서울 도렴동 외교통상부 앞에서 한중FTA 강항처리 규탄 기자회견이 열렸다. 기자회견 장소에 한국 농업의 죽음을 상징하는 그림이 바닥에 놓여있다. / 김창길 기자 (경향신문DB)




 한편, 중국과 치열한 전략적 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은 환태평양동반자협정(TPP)에 일본과 한국을 편입하여 중국의 세를 견제하는 네트워크 전략을 전개하고 있다. 한·중 FTA 협상이 진전될수록 미국의 한국에 대한 TPP 가입압력은 거세어질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중 FTA 협상은 밖으로 돌아가는 판세에 영향을 받게 되어 있다. 관련국들의 속내를 정확히 읽으면서 전략적 대응을 해 나가야 하는 측면이 있는 것이다.


일본은 자국경제의 폐쇄적 구조를 넘기 위한 일종의 충격요법으로써 TPP 가입을 추진해 왔다. 또한 중국과의 경쟁관계 속에서 미국과 연계를 강화하여 균형을 이루려는 전략적 노력의 일환으로 미국 주도의 TPP 가입을 고려하고 있다. 반면 과도한 미국경사에 따른 위험을 분산하기 위해 한·중·일 FTA 혹은 광역 동아시아 FTA를 염두에 두고 있다. 여기서 분명한 점은 한·중·일 FTA가 TPP에 대한 헤징(hedging) 혹은 미국과의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방편이지 결코 대안은 아니라는 점이다. 


중국은 미국이 TPP 가입국을 확대해 자국을 포위하고 있다고 강한 경계심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까닭에 한국과 일본이 미국의 대중견제 네트워크에 깊숙이 편입되지 않도록 전략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한·중·일 FTA가 그 수단이다. 한·중 FTA 역시 이런 차원에서 고려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국에 한국은 주요 교역국이지만 FTA에 따른 경제적 이득은 그다지 크지 않다. 나아가 실제 FTA 협상에서 한국의 민감품목군인 농수산업 및 경공업 부문의 보호를 어느 정도 인정해야 하는 반면, 중국의 민감품목군인 자동차, 석유화학, 기계 부문은 일정하게 개방해야 하는 현실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FTA를 원하는 이유는 다분히 전략적인 고려 때문이다. 


일본은 TPP 협상 참가를 최우선시할 것이며, 중국은 반TPP 네트워크를 추구하면서 실현가능성이 있는 한·중 FTA를 통해 미국을 견제할 것이다. 양국은 겉으로 한·중·일 FTA를 지지하지만 실상 이것이 지난한 과제임을 잘 알고 있다. 양국 간 전략적 경쟁관계 때문이다. 한국이 적절한 가교역할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간 삼국 간에는 상대적으로 비정치적인 분야인 기술, 환경, 금융 등에서 많은 협력 노력이 있었으나 어느 하나 성과를 내지 못해 왔다. 보다 정치적인 성격이 강한 무역 부문에서 의미있는 합의를 도출하기는 더욱 어렵다.


이렇게 보면 한·중·일 FTA나 광역 동아시아 FTA는 상황에 따른 전략적 제안이지 진정성을 수반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한국이 스포일러의 입장에 설 필요는 없다. 긴 안목으로 동아시아 경제통합을 전망하면서 이에 걸맞은 FTA모델을 제시하는 실천적 선구자가 되어야 한다. 한·중 FTA가 그 원점이어야 하고, 한·중·일 FTA 역시 그렇게 접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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