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브렉시트가 던지는 화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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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정동칼럼]브렉시트가 던지는 화두

by 경향글로벌칼럼 2020. 2. 14.

21세기 세계질서는 어느 지역이 선도해 갈까? 1990년대를 관통했던 화두 중 하나다. 당시 상당수 학자들은 유럽연합(EU)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지난 1월 말로 브렉시트가 현실화되면서 이런 전망이 무색해졌다. 그렇다면 브렉시트, 나아가 EU의 오늘은 우리에게 어떤 화두를 다시 던지는 걸까?


경제적으로만 보면 영국이 더 잃는 선택이다. EU의 역내 무역규모는 영국의 10배에 달하고, 영국은 무역의 50%가량을 EU시장에 의존해왔기 때문이다. 영국 정부도 최악의 경우 경제규모가 8% 이상 축소될 수도 있다고 본다. EU 잔류를 원하는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의 분리 독립도 걱정해야 할 판이다.


럽의회 의원들이 29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 유럽의회에서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협정안 비준 투표를 끝낸 후 손을 잡고 ‘올드 랭 사인’을 부르고 있다. 브뤼셀 _ AP연합뉴스


그렇다면 왜 떠나는 걸까? 핵심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다. EU에 남을 경우 자신들의 처지가 더 나빠지리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이민자 및 불법체류자 문제를 빌미로 정치적 반격을 가한 것이다. 


영국 정부의 통계에 의하면 2018년 당시 EU 출신자 360만명과 비EU 출신자 574만명이 영국에 거주 중이다. 인구 대비 각각 5.5%와 8.8%에 해당하는 수치다. 한국으로 치자면 665만명 이상의 외국인이 거주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EU 출신자 중에서는 폴란드 및 루마니아 출신이 폭증해서 각각 83만명과 40만명에 달했다. 문제는 증가 속도였다. 2008년 이후로 연평균 30만명 이상이 쏟아져 들어왔다. 


배경 원인은 EU의 회원국 확대 조치였다. EU는 2004년에 폴란드, 헝가리를 포함해 동유럽국가 10개국, 그리고 2007년에 루마니아와 불가리아를 회원국으로 받아들인다. 유럽시민권자가 확 늘어난 것이다.


이런 결정의 기저엔 새로운 세계질서를 주도하겠다는 EU 지도자들의 섣부른 자신감이 내재해 있다. 실제 2000년대 초반까지 EU는 세계 최대 자유무역지대를 창설하고 단일통화 도입 등으로 새로운 세계 경제질서를 주도했다. 동유럽까지 합칠 경우 미국도 능가하는 세계 최대 경제권이 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문제는 이 시장확대 과정에서 노동자의 초국적 이동은 자본이나 재화의 이동과 달리 더 세심한 제도적 준비가 필요하다는 점을 간과했다. 시장만능주의 사고가 EU 지도자들의 전략적 결정을 지배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2008년의 미국발 금융위기와 2010~2012년의 ‘아랍의 봄’을 거치면서 동유럽 인구이동 및 난민 유입이 맞물리며 유럽 전역에 걸쳐 극우정치세력이 창궐하는 원인이 된다. 특히 유럽 전역에 걸쳐 불법체류자가 400만명 규모로 급증했고, 이들 가운데 4명 중 1명 정도가 영국으로 몰려들었다. 브렉시트는 그 연장선상에서 촉발된 것이다. 


그렇다면 향후 EU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두 갈래 상반된 길에 직면해 있지 않나 싶다. 하나는 정치통합의 수준을 높이는 길이다. 현재 EU의 장기침체나 지역 및 국가 간 불균형 발전 문제에 더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더욱 강력한 연방정부가 필요하다. 현재와 같은 느슨한 국가연합으로는 힘들다. 그 상징적 예가 EU의 1년치 예산규모다. 회원국 정부들 총예산의 50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물론 금융정책을 제외한 주요 거시경제 및 사회복지 정책들도 여전히 회원국 정부들이 주요 권한을 갖고 있다.


다른 길은 시장통합의 수준을 낮추는 것이다. 특히 자본과 노동에 대한 초국적 이동 제한과 유로화의 폐지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실제 유로화 도입 이후 환율 위험이 사라지면서 역내 초국적 자본의 이동 양과 속도가 증가했고, 이에 따라 유로권 전체가 거대한 부채연결망으로 구조화되어 왔다. 장기침체에 시달리는 핵심 이유다. 


두 길 모두 결코 간단치 않다. 시장통합을 제한하는 조치들은 EU의 존립근거 자체를 허무는 격이고, 정치통합은 회원국들이 주권을 더 양도해야 하는 일이다. 진퇴양난이다. 상당기간 혼란과 정체가 불가피해 보인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초국적 시장통합은 그에 걸맞은 정치사회적 통합과 상보적으로 추진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장래 동북아 자유무역지대 창설이나 남북한 간 경제협력을 통해 시장통합을 도모한다고 할 경우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할 문제다. 


특히 노동자의 초국적 이동에 대해선 면밀한 제도적 준비와 시간이 필요하다. 한국에도 2018년 말 기준 체류 외국인이 약 236만명으로 전체 인구 대비 4.6%, 불법체류자는 36만명에 달한다. 다문화주의가 필요하다는 당위적 주장만으로 문제가 해결될 단계를 넘어서지 않았나 싶다.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준비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한국판 극우정치와 사회·정치 분열의 또 다른 원인이 되기 전에.


<강명구 뉴욕시립대 바룩칼리지 정치경제학 종신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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