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총선 국면에서 본 한·미 안보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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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정동칼럼]총선 국면에서 본 한·미 안보현안

by 경향글로벌칼럼 2020. 2. 24.

안보 문제는 그 중요성과 달리 일반의 관심이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정부발표와 뉴스만으로는 그 내막을 파악하기 어렵다. 국가 간 첨예한 이해관계와 국내 정치세력의 입장이 착종되어 누구 말이 옳은지 구분하기 곤란하다. 모든 이슈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선거 때면 한·미 동맹 주요 이슈가 현안으로 자주 부각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 같으면 시끌벅적할 일도 대충 결정하고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안보 문제는 대충 처리하거나 그냥 넘어가서는 안된다.


국제정치학자들은 한·미 동맹을 ‘비대칭’적이라 규정하며, ‘개입과 연루’ ‘후원과 피후원’ 같은 개념을 동원한다. 아무리 그럴듯하게 포장해도 한국과 미국이 불평등한 관계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최근 한·미 간 긴장이 발생하는 것은 한국이 과거와 달리 자주성을 더 이상 양보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미국은 한국의 자주성을 더욱 억제하려는 양상을 보인다. 미·중 패권경쟁 상황에서 동맹국 이탈을 단속하고 결속을 강화하려는 전략 때문일 것이다.


미·중 양자 사이에서 한국이 지극히 당연한 최소한의 손해와 최대한의 이익을 추구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미국의 입김도 작용하겠지만 국제관계와 국익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과 인식이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국익을 위해 미국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하면, 어김없이 ‘그럼 미국을 버리자는 것이냐?’는 반론이 튀어 나온다. 우리에게 중국과 미국은 어느 하나를 버리고 말고 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미국과의 관계는 그 중요성을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중국은 우리에게 경제적으로 너무 중요하다. 굳이 양자의 의미를 평가하자면 미국을 버리면 안보적인 자살, 중국을 버리면 경제적인 자살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대교역국인 중국의 입장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말을 전통적인 동맹국인 미국을 버리자는 것으로 오역하는 것은 의도적 난독증이자 자해적이며 왜곡된 사대주의적 자의식의 반영일 뿐이다.


국력이 신장하고 민도가 높아지면서 미국이 우리의 대외정책 의사결정 과정에 개입하는 전략도 고도화되어가고 있다. 그람시에 따르면 강대국이 헤게모니를 유지하는 대표적인 방법은 ‘동의’와 ‘강요’이다. 강대국의 요구가 정당하거나 국력차이가 아주 크게 벌어져 어떠한 거부도 가능하지 않을 때는 ‘동의’의 기제를 사용한다. 그러나 국력이 강해지고 국민들의 자의식이 성숙해지면 정당하지 않은 강대국의 요구를 거부하려는 경향이 발생한다. 이럴 때는 동의와 강요 사이에 존재하는 ‘회색지대’가 동원된다. 사실상 ‘강요’지만 ‘동의’의 형식을 띤다.


박근혜 정권이 흔들리던 마지막 시기에 한·미 간 주요 안보이슈에 대한 결정이 무더기로 이루어졌다.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체결하고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를 배치했다. 이런 결정들이 박근혜 정권의 정당성이 약화되던 시기에 급작스럽게 이루어졌다는 점을 그냥 넘어가서는 안된다. 동의와 강요 사이의 회색지대가 동원되었다는 혐의를 둘 수 있는 상황이다. 권력의 정당성이 약화될 때 강대국은 그 틈을 놓치지 않는다. 작용에는 반작용이 뒤따르는 법이다. 중국의 보복이 뒤따랐다.


총선을 앞두고 박근혜 정권 말기와 같은 상황이 재현될까 우려스럽다. 지정학적 자살이라는 평가를 받는 호르무즈해협 해군함정 파병 결정이 내려졌다. 총선을 앞두고 집권세력의 정치적 입지가 약화되는 시점에 제기되고 있는 사드 성능개선과 추가배치, 중거리핵미사일 배치, 주한미군 주둔비용 인상과 같은 현안들이 걱정된다. 정치권이 진영으로 양극화되는 상황에서, 집권세력이 정치적인 수세에 몰리면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것과 같이 국익을 포기하는 결정을 할 수도 있다는 점이 우려스럽다. 집권세력을 곤경에 몰아넣기 위한 야권의 의도적인 중국 때리기는 우리 스스로 동의와 강요의 ‘회색지대’로 들어가게 하는 채찍질이다.


사드 성능개선과 추가배치 그리고 중거리핵미사일 배치는 중국의 극단적 반발을 초래할 수 있는 사안이다. 자칫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치명적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사드 배치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손실을 당할 것이다. 강력해진 한·미 동맹도 중국의 보복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을 벌충할 수 없다. 강력해진 한·미 동맹보다 훨씬 더 강력한 새로운 안보위협이 발생할 것이다.


이번 총선으로 어떤 정치적 국면이 조성될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지금처럼 네 편 아니면 우리 편으로 나누는 이분법적 구도에 빠져 영원한 적도 우방도 없다는 국제관계의 본질을 도외시하지 않았으면 한다.


<한설 예비역 육군준장·순천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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