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일본 12월 총선거 ‘아베의 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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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정동칼럼]일본 12월 총선거 ‘아베의 꼼수’

by 경향글로벌칼럼 2014. 11. 27.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가 11월21일 국회를 해산하고 12월14일 총선거 실시를 선포하였다. 2015년 10월로 예정된 소비세율 인상 실시를 1년반 연기하면서 이에 대한 시비와 자신의 경제정책, 이른바 아베노믹스의 평가를 국민에게 묻겠다는 것이다.

총리의 국회 해산권 행사는 이전 선거에서 상정되지 않았던 쟁점이 부각되거나 총리와 국회의 대립으로 정국이 교착 혹은 혼란 상태에 빠지는 경우 실시하는 게 일반적이다. 2005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역점사업인 우정(郵政)사업 민영화 법안이 국회에서 부결되자 중의원 해산과 총선거를 결행해 327석이란 기록적인 승리를 거두고 법안을 가결시킨 바 있다. 그는 유권자의 주된 관심사가 아니었던 우정민영화를 고이즈미 개혁에 대한 찬반 투표로 프레임하였고 압도적 지지를 이끌어 냈다. 당시 고이즈미 총리 하에서 관방장관을 지냈던 아베는 이를 본받아 이번 선거를 “아베노믹스 선거”라 규정하였다.

그러나 야당이 아베노믹스에 대한 불신임을 선언하지도 않았고, 소비세율 인상 연기를 명시적으로 거부하지도 않았다. 2012년 만들어진 소비세 증세법은 2단계 소비세율 인상을 정하면서 경기가 악화될 경우 연기조항을 설정해 놓았기 때문에 총선의 명분은 더더욱 약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회 안정의석을 확보하고 있는 아베 총리가 국회 해산을 단행한 이유는 무엇인가.

아베 총리의 결정은 장기집권을 위한 정치적 판단의 결과이다. 60%를 전후하는 탄탄한 지지율을 보이던 아베 내각은 지난 9월 내각 개편 이후 연이은 각료 스캔들로 지지율이 50% 이하로 하락하는 추세에다, 일본이 지난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 쇼크에 가까운 결과에 향후 경제운영에 노란 불이 켜졌다. 내년 4월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끌고 9월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하여 2018년까지 총 6년간 장기집권하는 시나리오는 불투명해졌다. 일본의 여러 언론들은 아베의 결정을 지지율 하락과 경제상황 악화에 따른 불안정 요소를 해산-총선거의 승리로 반전시키고, 지방선거와 총재선거를 겨냥한 선제적 대응이라 판단하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연설 모습 (출처 : 경향DB)


이와 함께 아베의 속내를 읽으려면 그가 존경하는 외조부(祖父) 기시 노부스케(岸信介)의 사례를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기시는 총리 재임 시절인 1960년 다수 국민이 거세게 반대한 미·일안보조약 개정을 단행한 후 중의원 해산-총선거를 추진했으나 조약 개정 과정에서의 혼란으로 퇴임하고 말았다. 훗날 그는 조약 개정을 내걸고 국회 해산을 단행, 선거 승리 후 조약 개정으로 갔다면 롱런하였으리라 애통해한 바 있다.

아베 총리의 궁극적 목표 즉, “전후 레짐으로부터 탈각”하여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용인하고 헌법개정으로 자주적 일본의 귀환을 이룩하는 프로젝트는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 중대한 첫 단추로 지난 7월 총력을 기울여 성사시킨 집단적 자위권 행사 용인의 각의 결정에 따라 자위대법 개정 등 일련의 안보정책 관련 법안들이 내년도 정기국회에서 처리되어야 한다. 아베 총리는 자신이 잘해온 경제사안을 이슈로 만들어 해산-총선거로 국민의 신임을 확보한 후, 이를 명분으로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안보(이념) 사안을 밀어붙이고자 꼼수를 쓰고 있다.

현재 상황은 아베 총리에게 나쁘지 않다. 교도통신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정당지지도는 자민당 32%와 민주당 5%, 비례대표의 경우 자민당 37%와 민주당 13%로 일본 유권자들은 여전히 자민당을 선호하고 야당은 분열되어 지리멸렬의 상태이다.

만일 선거결과가 각 상임위를 지배할 수 있는 절대 안정 다수인 266석을 넉넉히 상회한다면 아베 총리는 경제운영에 대한 신임을 바탕으로 이념과 안보에 노력을 경주할 것이고 한·일관계의 어려움은 지속될 것이다. 반면 유권자가 해산-총선거의 꼼수에 심판을 가해 자민당 의석수가 과반수 선에 근접한다면 경제회생에 집중하면서 보다 실용적인 외교정책을 추구할 가능성이 높다.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는 2015년 한·일관계의 전도는 12월 선거에 달려 있을지도 모른다.


손열 | 연세대 국제학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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