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동아시아 칼리지’ 서두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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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국제칼럼]‘동아시아 칼리지’ 서두르자

by 경향글로벌칼럼 2014. 11. 30.

동아시아의 엘리트를 한국에서 양성한다. 필요하고 가능한 일이다. 아니, 다른 국가나 도시가 선점하기 전에 서둘러 시작할 일이다. 유럽에서 초국적 엘리트 양성의 모범 사례를 발견할 수 있다. 현재 유럽에는 진정한 의미의 범 유럽 대학이 두 곳이다. 하나는 이탈리아 피렌체에 있는 연구 중심의 유럽대학원(EUI)이고, 다른 하나는 벨기에 브뤼헤에 자리한 교육 중심의 유럽칼리지(College of Europe)이다. 특히 유럽칼리지는 유럽통합이 시작되기도 전인 1949년 민간을 중심으로 설립했다. 회원국 정부가 모여 설립한 유럽대학원이 지지부진한 협상으로 1976년에야 개원한 것과 대조적이다.

영국 타임스는 하버드경영대학원이 미국의 경영 엘리트를 양성하듯이 유럽칼리지는 유럽 정치 엘리트의 산실이라고 평가한다. 현재 덴마크의 토르닝 슈미트 총리와 핀란드의 스투브 총리, 그리고 영국의 클레그 부총리 등이 유럽칼리지 졸업생이며, 유럽연합 기관과 회원국 다수의 장관 및 고관이 이 학교 출신이다. 유럽칼리지의 목표는 처음부터 명확했다. 다양한 국가의 우수한 학생들이 함께 모여 공부하고 생활하는 과정에서 ‘유럽의 정신’을 만들어 내고 유럽 대륙의 미래를 이끌어 가는 데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다.

지난 칼럼 ‘베네룩스의 성공모델과 한반도’에서 한국도 베네룩스처럼 강대국 사이에서 불행했던 지정학적 저주를 축복으로 바꿔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아시아의 정신’을 만들어내고 지역의 미래를 선도하는 초국적 엘리트를 양성하는 교육 연구 기관은 한반도에 자리 잡는 것이 자연스럽고 적합하다. 또한 중국이나 일본 등 강대국이 주도하는 기관은 편향적이라는 의심에서 벗어나기 어렵고, 패권의 도구로 비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한국은 이런 의심에서 자유롭다. 게다가 민주 국가 한국은 자유로운 교육 환경을 제공하고 경제발전도 초국적 계획을 추진할 만한 수준이다. 한국에는 이미 동아시아를 내세우는 다양한 재단과 연구소와 과정들이 존재한다. 이런 재원 가운데 일부만 할애하더라도 인재에 투자하여 동아시아의 미래를 장기적으로 준비하는 작업을 시작할 수 있다.

올해 4월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벨기에 브루지 콘서트홀에서 연설 중 유럽칼리지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_ AP연합


유럽칼리지의 성공 조건은 간단하다. 소수라도 최고의 인재를 모아 최고의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다. 한·중·일과 동남아의 미래를 책임질 우수한 학생들을 선발하기 위해서는 학비와 생활비를 전액 제공하는 등 획기적인 대우가 필요하다. 1년 대학원 과정으로 운영되는 유럽칼리지는 정부와 기업, 다양한 재단의 지원으로 장학제도를 운영해 왔다. 학교의 주체는 민간 재단으로 독립성을 유지하면서도 장학금으로 정부나 기업의 자금을 동원했다는 뜻이다.

최고의 교육이란 동아시아의 대표적 지성과 정치인, 기업인을 동원하는 프로그램으로 교육과정을 유연하게 운영하는 것이다. 일례로 베이징과 도쿄, 상하이와 홍콩 등에서 최고의 교수 및 강연자를 단기적으로 초청하는 방식이다. 학교가 인천이나 김포공항 등에 근접하다면 가능한 이야기다. 유럽칼리지도 초기에는 전임 교수 없이 시작했다. 반면 유럽 집행위원장이나 회원국 정상 등이 맡아 진행하는 매년 초청 강연은 유럽통합의 방향을 좌우하는 지표가 됐다.

또 다른 성공 비결은 유럽칼리지가 물리적으로 브뤼헤에 자리 잡고 있으며, 그곳에서 학생들이 함께 생활하면서 풀타임 교육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디지털 시대라지만 한 공간에서 함께 숨 쉬고 부대끼는 가운데 공동체의 경험과 의식이 만들어질 수 있다. 서머스쿨이나 일시적 네트워킹으로는 서로의 차이점만을 발견하는 데 그칠 수 있지만, 장기간의 공동생활은 학생들이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인다. 무엇보다 자국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사고하던 틀에서 벗어나 동아시아라는 지역을 기준으로 사물을 보고 미래를 구상하는 습관은 공동체 의식 형성에 매우 중요하다.


조홍식 | 숭실대 교수·사회과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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